[사람 사람] 임진각서 울먹인 베트남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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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초청으로 지난 1일 방한한 베트남의 대표적인 시인 반레(54)가 지난 4~5일 임진각과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를 찾았다.

시인이자 소설가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기도 한 반레는 고교를 졸업하던 1966년 17세의 나이로 베트남전에 전투병으로 입대, 7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10년간 복무했다. 베트남전에서 그는 함께 입대한 동료 3백명 중 2백95명을 잃었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진 전우를 대신해 76년 시로 등단했다. 본명인 레지투이 대신 친구의 이름을 따 반레를 필명으로 삼았다.

임진각을 다녀온 소감을 묻자 반레는 "과거 17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했던 30여년 전 베트남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날씨는 너무 아름다웠고 새들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자유롭게 날아갔다. 언뜻 평화로워 보였지만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꼈다"며 분단 현장을 둘러본 느낌을 이야기했다. 반레의 이번 방한은 한국 의료시설에서의 건강검진을 겸한 것이다. 간경화가 진행 중인 시인의 몸 속에는 아직도 총탄 파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레는 9일 출국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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