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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군 정보를 사용하는 정치지도자가 최종 책임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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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이번 추석 명절은 어느 해보다 우울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고향 방문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의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군은 첩보 아닌 신속한 정보 제공 #NLL 이북 대응은 정치의 판단 영역

코로나19와 공무원 피살 사건은 국민의 안전 및 생명 존중과 직결되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이자 포괄적 국가안보 사안이란 공통점이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지켜줘야 할 국민이 어디에서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를 가장 신속하게 확인하는 데 있다.

그런데 당초 실종된 우리 국민의 생사를 최초로 확인한 군의 첩보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논란은 세 가지다.

첫째, 보호해야 할 첩보 출처와 상세 내용이 무분별하게 노출됐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 군 첩보와 북한의 통지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셋째, 군이 골든타임에 조치를 안 했다는 것이다.

이들 논란은 모두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권력을 과시하고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위정자들의 무지와 무책임, 당리당략에 급급한 진영 싸움, 이에 편승하려는 전문가와 일부 언론의 이해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대북 정보를 오래 다뤄온 필자의 시각에서 다시 보자. 첫째, 피격 사건 관련 한·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것은 조각조각의 불충분한 첩보가 아니었다. 그중에는 생사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위치 정보와 그 공무원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정황증거를 알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 북한과의 접적(接敵) 해역에서 입수한 정보는 정확성과 완전성보다는 적시성이 최우선이다.

우리 군에는 수십년간 이런 정보와 첩보를 수집·분석하는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춘 베테랑 분석관들이 많다. 다양한 정보 수집 수단 중 이번 피격 사건에서 회자하는 특수정보(SI)는 그 출처가 노출될 때 국가안보에 치명적이다.

상대가 역정보로 기만하거나 통신 수단 등을 다른 방법으로 바꾸면 우리는 당분간 까막눈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는 데는 상당 기간과 예산은 물론 피 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북한은 이미 통신 보안을 대폭 강화했을 것이다.

둘째, 우리 군 첩보를 믿을 것이냐, 북한의 대남 통지문을 믿을 것이냐는 논쟁거리가 안된다. 우리 국민이 구해달라며 신분을 밝혔는데도 총격으로 생명을 앗아간 북한군의 반인륜적 행위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국민의 소재를 포착하지 못했다면 북한의 만행이 묻히고 말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국민적 공분이 치솟는데도 북한의 통지문이 마치 진영 싸움장에 기름을 부은 듯해 우리가 전략적 실패를 반복하는 하는 것이 아닌가 답답하다.

셋째,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골든타임 6시간 동안 우리 군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일각에서 비난하지만, 군의 대응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실종자의 위치가 처음 포착된 곳이 북방한계선(NLL) 북측이란 특수성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 NLL 북측 해역의 우리 국민에 대한 대응조치는 군 자체 결심사항에서 멀다. NLL 이북 해역은 정치적 영역이기 때문에 군이 독자적으로 들어가거나 대응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이 문제는 정치권이 답할 차례다.

정보 분석은 군 정보기관이든 국가정보기관이든 정치적 고려 없이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정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의 판단과 결심은 정책결정자들의 몫이다. 이번 사건에서 정보의 사용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용자인 정치 지도자가 지는 것이 맞다. 물론 분석을 잘못했다면 당연히 정보기관 책임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 지도자는 없고 국민만 가슴앓이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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