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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폐업 공장에 "비정규직 직고용" 시정명령 내린 고용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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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18년 5월 문을 닫은 한국지엠(GM) 군산공장 안으로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5월 문을 닫은 한국지엠(GM) 군산공장 안으로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일했던 사내하청 근로자 148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은 2018년 폐쇄됐다. 사라진 사업장에 직고용 명령이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고용부 15일 한국GM에 '직고용' 시정명령 #2018년 폐쇄된 군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 148명 #폐쇄된 공장 관련 직고용 시정 명령은 사상 처음 #"사업장이 아닌 법인에 불법파견 시정 요구한 것" #시정명령 이행할 공장 없는 셈…한국GM 곤혹 #한국GM "법적 다툼 진행 중"…이행 거부 의사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의 시정명령을 지난 15일 한국GM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달 27일까지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인당 1000만원씩의 과태료(총 14억8000만원)가 부과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 7월 검찰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불법파견) 혐의로 한국GM과 회사 임원 등 28명을 불구속 기소한 데 따른 후속 행정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이하 군산공장)은 2018년 5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2년 만에 폐쇄됐다. 정부가 내린 시정명령을 이행할 공장이 없는 셈이다. 또 불법파견에 따른 직고용의 전제조건은 직고용 이전의 담당 업무나 근무 장소 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유지할 방법도 사라졌다. 민법의 '원시적 불능'에 버금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한국GM측의 입장이다.

김대환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공장이 폐쇄된 경우 시정명령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학계와 법조계 등의 자문을 받은 결과 법인(한국GM)에 대해서는 직고용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불법파견에 따른 직고용 시정명령은 사업주에게 내려진다. 따라서 공장은 부평·창원·군산으로 분산돼 있지만 법인은 한 곳(한국GM)이기 때문에 법인에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다.

'출입금지 출입문 폐쇄'라는 경고문이 적힌 딱지로 봉쇄된 한국GM 군산공장 조립공장 출입구. 중앙포토

'출입금지 출입문 폐쇄'라는 경고문이 적힌 딱지로 봉쇄된 한국GM 군산공장 조립공장 출입구. 중앙포토

직고용 명령이 내려진 이상 한국GM은 이를 이행하거나 과태료를 무는 수밖에 없다. 직고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직고용 대상인 사내하청 근로자를 일일이 찾아 "직고용을 원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6년째 적자 상태다. 최근에는 자금 압박에 부평물류센터 부지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정명령의 이행을 기대하긴 힘들다.

한국GM은 2018년 5월 고용부가 창원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근로자 774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적자에 시달리는 경영 사정과 법적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한국GM 관계자는 "정규직 여부를 따지는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라며 "시정명령에 대해서도 그 차원에서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행정소송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고용부 군산지청 관계자는 "공장이 없어졌고,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시정명령을 이행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시정명령의 이행여부가 불투명하다는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설령 한국GM이 직고용한다고 하더라도 부평이나 창원공장에 근무토록 배치전환을 해야 한다. 이 경우 부평·창원공장에 구조조정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 직고용 근로자가 잉여인력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지회 등이 지난해 12월 30일 창원공장 앞에서 노동자대회를 열고 대량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11월 말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합뉴스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지회 등이 지난해 12월 30일 창원공장 앞에서 노동자대회를 열고 대량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11월 말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합뉴스

고용부 전 고위 관계자는 "현재 경영사정으로 볼 때 (군산공장 사내 하청 근로자를)직접 고용해서 생산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며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그중 하나다. 한국GM은 창원공장에 시정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 방식으로 대응했다. 또 한 가지는 코로나19 상황을 활용한 정리해고 방안이다. 시정명령대로 직고용을 한 뒤 곧바로 무급휴직으로 돌려 고용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수령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충당하고, 이후 정리해고 절차를 밟는 방법이다. 무급휴직은 정리해고에 앞선 해고 회피 노력으로 간주된다. 이 관계자는 "후자의 경우 정리해고에 돌입하면 기존 근로자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자칫하면 시정명령이 구조조정의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장 폐업이 아닌 이상 공장 폐쇄와 같은 극한의 경영사정에 몰린 상태에서 내려진 경영·경제적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쉽다"며 "시정명령의 실효성과 실익을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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