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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수퍼전파자'···느리게 퍼지다 바람타고 2단계 공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90명으로 늘어난 지난 3월 11일 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구로구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90명으로 늘어난 지난 3월 11일 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구로구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단계에서는 한두 사람 사이에서 서서히 퍼지지만, 에어컨 바람의 도움을 받으면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하게 번지는 2단계 전파가 나타난다."

캘리포니아大 교수 유체역학 모델 활용 #구로 콜센터 등 집단 감염 3사례 분석 #환기 부족 에어컨 '슈퍼전파자' 돌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이 2단계에 걸쳐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확산한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의 수학과 소속인 비욘 비르니르 교수는 14일 사전 리뷰 사이트(medRxiv)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난 3월 서울의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 사례 등을 들어 에어컨이 '슈퍼전파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르니르 교수는 논문에서 ▶지난 1월 말 중국 광저우의 음식점 에어컨에 의한 집단 감염 사례 ▶지난 1월 중국 저장성에서 불교 신도가 탄 버스의 집단감염 사례 ▶서울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등 세 가지 사례 분석한 후 코로나바이러스가 두 단계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단계는 잠복기를 포함해 며칠에 걸쳐 서서히 개인 간의 선형 확산이 진행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에어컨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아 지수적(기하급수적)으로 확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에어컨 같은 환기 시스템이 슈퍼전파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바이러스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과 관련해 인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구로역 자체 방역팀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과 관련해 인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구로역 자체 방역팀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비르니르 교수는 우선 사람이 강하게 기침할 때 내뿜는 침방울은 난기류 구름 형성하고, 최대 7~8m(25피트)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존 연구를 소개했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감염자의 호흡으로 작은 침방울과 에어로졸이 퍼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농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우한 병원의 환기 시스템과 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의 병실 공기의 작은 침방울과 에어로졸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이 같은 작은 침방울과 에어로졸에 의해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앞서 비르니르 교수가 포함된 연구팀은 라그랑주 유체 역학을 기반으로 한 모델을 개발했다.

감염된 사람에 의해 숨을 내쉬면 작은 침방울과 에어로졸(미세한 물방울) 구름이 어떻게 퍼지는지, 제한된 공간에서 감염자가 보내는 시간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침방울과 에어로졸 농도가 어떻게 증가하는지를 예측하는 분석 모델이다.

비르니르 교수는 이 분석 모델을 앞서 세 가지 사례에 적용한 결과, 감염 예방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즉 환기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구로 콜센터 감염 사례

구로 콜센터 확진자 발생 상황. 자료:질병관리본부 발표 논문

구로 콜센터 확진자 발생 상황. 자료:질병관리본부 발표 논문

지난 3월 서울 구로 콜센터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은 2월 22일 증상을 보인 10층 근무자에서 시작됐다.

2월 25일에 11층에 있는 한 명이 증상을 보였고, 28일에는 11층에 있는 3명이 더 증상을 보였다. 29일과 3월 1일에 10층 두 사람이 더 증상을 보였고 3월 2일에 9층에 한 사람이 증상을 보였다.

이러한 감염은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감염된 사람과의 긴밀한 접촉으로 인해 발생했다.

하지만 3월 4일에 확진자 숫자가 급격한 늘어나기 시작해 6일 동안 계속 확산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2단계에 이른 것이다.
처음 21명을 감염시키는 1단계 전파에는 21일이 걸렸지만, 76명을 감염시킨 2단계 전파에는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2단계 전파가 1단계 전파와 같은 속도로 발생했거나 하루에 대략 한 사람이 발생했다면 감염된 모든 사람을 감염시키는 데 76일 또는 2개월 이상이 걸렸을 것이다.

지난 4월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논문을 인용한 비르니르 교수는 "1단계 전염에는 제한된 수의 개인이 포함되고, 1~2일의 시간 지연이 있었고, 2단계 전염은 훨씬 더 빠르고 많은 사람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구로 콜센터 내 확진자의 자리 배치도. 자료: 질병관리본부 발표 논문

구로 콜센터 내 확진자의 자리 배치도. 자료: 질병관리본부 발표 논문

서울 구로구 콜센터 내부 모습. 좌석마다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서울 구로구 콜센터 내부 모습. 좌석마다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뉴스1

한편, 11층 중에서도 1호실에서는 집단감염이 일어난 데 비해 2호실에서는 산발적인 전파만 일어난 것과 관련, 비르니르 교수는 "감염자가 계속 늘었던 1호실에서는 매일 퇴근 시간 무렵이면 침방울이나 에어로졸 농도가 위험한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2호실에서는 침방울이나 에어로졸이 임계 농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호실 감염자는 1호실 감염자와 접촉해 감염됐지만, 1단계 전파에서 2단계 전파로 진행되기 전인 3월 9일 건물이 폐쇄됐다는 것이다.

광저우 음식점 감염 사례

중국 광저우 음식점 내 에어컨 바람과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 상황

중국 광저우 음식점 내 에어컨 바람과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 상황

지난 1월 24일 우한에서 하루 전 돌아온 한 가족이 중국 광저우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가족 5명 중 한 사람이 같은 날 오후 병원을 찾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이 가족을 포함해 인근 테이블에서 식사한 세 가족 9명이 차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음식점 직원이나 다른 손님 중에는 감염자가 없었고, 감염자가 앉은 테이블 옆 에어컨의 공기가 직접 닿은 사람들만 감염됐다.
감염자 대부분은 최초 감염자와의 사이에 거리가 2m 이상 유지했는데도 감염된 것이다.

음식점의 외부 환기구는 닫혔고, 실내 에어컨이 가동되면서 음식점 내 일부 공기만 계속 순환됐다.
이에 따라 인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바이러스에 오염된 침방울과 에어로졸에 노출된 것이다.

비르니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감염자가 앉은 테이블뿐만 아니라 인근 두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15분 이내에 감염된 사람 옆에 앉았을 때의 농도가 됐다.

감염된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침방울과 에어로졸 구름을 계속 내뿜는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이러스가 함유된 물방울과 에어로졸의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되면 감염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들 세 가족이 앉은 테이블 주변에 침방울이나 에어로졸 농도가 쌓이지 않게 하려면, 권장 환기량(1인당 1초 8L)의 10배에 해당하는 공기를 주입해야 하는 것으로 비르니르 교수는 분석했다.

저장성 버스 집단 감염

저장성 버스 집단감염 사례 때 환자들이 착석한 좌석 위치.

저장성 버스 집단감염 사례 때 환자들이 착석한 좌석 위치.

지난 1월 19일 중국 저장성 닝보시의 한 불교 사원에서 행사가 열렸다.

신도 128명이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편도 50분 거리를 왕복했고, 150분 동안 예불에 참석하고 실내에서 식사도 함께했다.
행사에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은 신도 172명과 승려 5명도 참석했다.

68명이 탄 2호 버스에는 감염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전날 밤 우한이 있는 후베이 성을 다녀온 4명과 식사를 했고, 종교 행사 때에는 증상이 없었지만, 그날 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같은 2호 차를 탑승한 24명이 추후 확진됐다. 당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다.
예불 때는 1호 차와 2호 차 탑승자가 뒤섞였지만 1호 차 탑승자나 별도 참석 신도, 승려 중에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버스 에어컨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버스의 에어컨은 재순환 모드였기 때문에 외부 공기가 유입되지 않았다.

바깥 기온이 0~10도로 추웠고, 에어컨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는 버스 천정으로 올라갔다가 창문 쪽 틈새로 내려오는 식으로 순환됐다.

버스에는 4개의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던 덕분에 공기가 조금 들어왔고, 창가에 앉은 승객은 대부분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

비르니르 교수는 "세 사례 모두에서 집단 감염 원인은 밀폐된 공간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를 운반하는 물방울이나 에어로졸이 축적되기 때문"이라며 "물방울과 에어로졸이 포함된 바이러스를 제거하기에 환기가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환기를 충분히 하고, 감염된 사람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 2단계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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