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완화, 섣부른 결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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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를 14일부터 2단계로 낮춘다고 정세균 총리가 어제 발표했다. 고강도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 충격과 자영업자들의 고충 등을 고려한 현실적 조치의 성격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한 이번 조치는 방역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 경각심을 떨어뜨려 코로나19의 재확산을 초래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정부와 방역당국이 제시한 방역 기준에도 맞지 않고 국민의 방역 동참을 촉구하기 위해 쏟아낸 발언들과도 어긋난다. 당초 2.5단계의 부분 완화 정도를 예상한 많은 전문가도 이번 조치가 느닷없다는 반응이다. 원칙이 없는 ‘고무줄 방역’이 따로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국자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도 “수도권 코로나19 상황이 1차 대유행 시점의 대구·경북보다 더 우려스럽다”고 계속 경보를 울렸다. 최근의 신규 확진자 발생 흐름을 봐도 당국의 결정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수도권에서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8월 23일부터 전국에(수도권은 18일부터) 거리두기 2단계를 시행했다. 같은 달 30일부터는 수도권의 거리두기를 2.5단계(준 3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확진자는 8월 27일 정점(441명)을 찍었고 이후 점차 300명, 2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제 121명이 나온 것을 포함해 최근 열흘 이상 여전히 1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2단계 기준은 신규 확진자 50명 이상~100명 미만인데 2단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셈이다.

단순히 확진자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소규모 집단감염이 수십 곳에서 벌어지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 비율이 20%를 넘었다. 방역당국이 코로나19의 고삐를 사실상 놓쳤다는 비판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고통스러워도 거리두기 2.5단계를 조금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총리와 여당 대표가 이번에는 고향 방문도 건너뛰자고 국민에게 호소해 온 상황에서 거리두기 완화 조치는 누가 봐도 엇박자다. 많은 국민이 고향에 갈지, 비대면 차례를 지낼지 고민하는 시점에 나온 정부의 완화 조치는 방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다. 중대본은 거리두기를 완화한 이번 결정이 초래할 엄청난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지난 12일부터 청으로 승격한 질병관리청도 이번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