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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겪어보지 못한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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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대기업 연구소 간부급 연구원인 A씨는 요즘 ‘초긴장 상태’다.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확산했을 때엔 교대로 재택근무를 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된 이후엔 회사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연구 장비를 가동하고 계속 실험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 연구소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연구동을 옮겨 다닐 때마다 체온을 재고 출입 시간을 기록할 뿐 아니라, 다른 연구원과 대면을 최소화한다.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2m 이상 떨어져 앉아 하고, 통근 버스도 평소의 절반만 태우고 이동한다.

최근 연구소 경영진 지원 부서로 옮겨간 뒤엔 긴장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이라도 했다간 경영진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자차로 이동하고 온종일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동료들끼리 대화는 카카오톡으로만 하는데, 자조 섞인 말투로 ‘1호가 될 수 없다(첫 확진자가 될 수 없다는 뜻)’고 말한다.

지난주 연구소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는데, A씨는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해당 연구동이 폐쇄되고 출입자 수십 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지만 최소한 ‘1호’의 멍에를 쓰진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회사는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면서 출근을 요구하는데, 혹시 확진이라도 되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을 가한다. 집에 가서도 서재에서 따로 자고 본가에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언택트·뉴노멀 시대를 맞아 고충이 심한 건 A씨 뿐이 아니다. 추석 귀성길마저 주저하게 된 건 그저 ‘코로나 시대의 풍경’으로 넘기기엔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진 맞벌이 부부도, 재택근무란 이름으로 집안일과 회사 일의 구분이 사라진 직장인도 고통스럽다.

2주째 재택근무 중인 B씨는 “재수감된 기분”이라고 했다. 처음 재택근무를 할 땐 늦게 일어날 수 있어 나름 좋았지만, 끼니를 가족들과 해결하며 육아와 집안일, 회사 업무가 뒤섞인 생활이 녹록지 않다고 했다.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추석이 다가온다. 진정 서로 배려하고 위로해야 할 때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