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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도 구로아파트 사태? 코로나, 배수관타고 윗층 올라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연합뉴스

최근 서울 구로구 아파트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환기구를 통해 바이러스가 퍼진 탓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2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광저우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고 오랫동안 비워둔 아파트 욕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아파트 다른 층에서 환자가 배출한 바이러스가 에어로졸(미세한 물방울이나 먼지 입자)을 통해 전파된다는 증거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中 사람 없는 빈 아파트에서 검출 #아랫집 변기 에어로졸이 퍼진 듯 #2003년 홍콩 사스 때와 유사한 사례 #구로구 집단감염 원인 관련해 주목

중국 베이징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연구팀과 유타·듀크대(大) 등 미국 연구팀은 지난 7일 '국제 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l)' 저널 온라인판에 게재한 논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에어로졸(미세한 물방울이나 먼지 입자)을 통해 전파되는 사례의 하나로 이 광저우 사례를 소개했다.

광저우 사례는 아직 별도 논문으로 발표되지는 않았고, '국제 환경'에 소개된 내용도 몇 문장 정도로 간단하다.
이 내용은 최근 블룸버그 통신도 보도했다.

15층에서 25층, 27층으로 전파돼

중국 광둥성 광저우 시내의 모습. 가운데 있는 것이 광저우 파고다 타워다. EPA=연합뉴스

중국 광둥성 광저우 시내의 모습. 가운데 있는 것이 광저우 파고다 타워다. EPA=연합뉴스

논문에 따르면, 이 아파트 15층에서는 1월 26~30일 5명이 코로나19로 확진됐고, 이 아파트 바로 윗층 16층 욕실 세면대·수도꼭지·샤워 손잡이 표면에서 채집한 시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RNA(리보핵산)가 검출됐다.
16층은 사람이 살지 않고, 장기간 비어있었는데도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다.

연구팀은 15층 화장실에서 현장 조사와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변기에서 물을 내릴 때 에어로졸이 생기고 이것이 아래위 세대를 연결하는 수직 배수관을 통해 확산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코로나19 환자의 상당수는 설사 증세를 보이고, 환자의 대변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다.

15층 시뮬레이션 실험에서 발생한 에어로졸은 같은 아파트 25층과 27층 화장실에서도 발견됐다.
이 아파트 25층에서는 2월 1일에 2명이, 27층에서는 2월 6일과 13일에 각 1명씩 확진자가 나왔다.

연구팀은 "엘리베이터를 통한 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례는 2003년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당시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 확인된 내용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홍콩 '아모이 가든' 사례와 관련, 2004년 4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렸던 논문 등을 참고문헌으로 소개했다.

2003년 홍콩, 수직 배수관과 환풍기가 원인

지난 2003년 3월 31일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 환자가 발생한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 단지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한 방역요원들이 격리된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03년 3월 31일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 환자가 발생한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 단지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한 방역요원들이 격리된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홍콩대학 등의 연구팀은 작성한 2004년 NEJM 논문에서 "아파트 단지인 아모이 가든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 300명 이상의 SARS 환자가 발생했다"며 "2003년 3월 14일과 19일 설사 증상을 보인 SARS 환자가 이 아파트 E동에 두 차례 들러 화장실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이 아파트 전체로 사스가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홍콩대 연구팀은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릴 때 수직 배수구 내에서 발생하는 수력작용(hydraulic action)으로 엄청난 에어로졸이 만들어진다"며 "수직 배수구에서 생긴 에어로졸이 환풍기 때문에 욕실로 빠져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NEJM 논문은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의 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WHO 조사 결과, 아파트 내 많은 세대에서 배수관이 물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수직 배수관과 각 세대 배수관 사이에 공기가 드나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팀은 또 배수관이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상황에서 욕실 환풍기가 수직 배수관의 에어로졸을 욕실로 빨아들여 욕실을 오염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같은 동 아래위 세대 사이에서는 수직 배수관과 환풍기 탓에 사스가 퍼졌다는 것이다.

WHO 조사팀과 홍콩대 연구팀은 아모이 가든 E동에서 같은 아파트 인근 동으로 사스가 전파된 데 대해서는 다른 원인을 제시했다.

환풍기가 오염된 에어로졸을 수직 환기구로 내보내는 역할을 했고, 오염된 에어로졸은 환기구에서 자연스러운 공기 흐름을 타고 위로 상승한 뒤 바람을 타고 아파트 다른 곳으로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직 환기구를 타고 오염된 에어로졸이 이동할 때, 환풍기를 틀지 않은 세대의 욕실로 에어로졸이 역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구로 아파트도 같은 라인에서 전파

26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뉴시스

26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구로구 아파트 11명 확진 미스터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로구 아파트 11명 확진 미스터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로구 아파트에서는 지난 28일에도 1명의 확진자가 추가돼 모두 1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기존에 확진자가 나왔던 같은 라인 다른 층 거주자다.

구로구 아파트에서는 지난 23일 이후 8세대서 모두 11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6세대는 아래위 같은 라인이었고, 나머지 2세대는 바로 옆 라인이었다.

특히, 한 층에 20여 세대가 있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유독 한 라인에서만 집중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해 원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까지 구로구 아파트에서는 일단 환기구가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구로구 아파트의 환기구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환기구뿐만 아니라 수직 배수구로 인한 에어로졸 전파 가능성도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현재 역학전문가, 건축전문가, 설비전문가, 질병관리본부, 시 역학조사관, 자치구와 함께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하수구, 환기구,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의견이 있어 모든 부분을 열어 놓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환풍기 틀 수도 없고, 안 틀 수도 없고 

아파트 환풍기. 중앙포토

아파트 환풍기. 중앙포토

한편,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코로나19와 관련해 가정에서도 환기를 자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특히, 환기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욕실 환풍기는 사용할 때마다 가동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사용하지 않을 때도 항상 켜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일 아파트 수직 환기구를 통해 바이러스가 이동한다면 욕실로 들어오지 않도록 환풍기를 가동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욕실 문을 닫고 환풍기를 계속 가동할 경우 홍콩 사례처럼 오히려 배수관의 바이러스를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재로써는 욕실 환풍기를 켜는 것이 나은지, 끄는 것이 더 나은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구로구 아파트의 집단감염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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