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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무궁화와 쉰 살 관세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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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노석환 관세청장

노석환 관세청장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은 강원도 홍천에 무궁화마을을 만들고 무궁화를 통해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했다. 그는 무궁화동산이란 노래도 지어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치며 국가의 독립된 미래를 일구고자 했다. 남궁 선생에겐 중요한 경력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원이다. 우리나라는 1878년 세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두모진해관을 설치해 관세 주권을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극심한 반발로 3개월 만에 폐쇄해야 했다. 이후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고용해 인천·부산·원산에 해관을 설치했다. 1884년 최초로 세관원이 된 이가 남궁 선생이다.

당시 세관은 오늘날보다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했다. 수출입 화물의 통관과 관세 부과 외에도 부두의 조성과 관리, 검역, 갯벌 매립 공사, 밀수 사범의 조사와 고발 등 부두로 들어오는 모든 업무를 담당했다. 1950~60년대는 정치 사회적 혼란과 전쟁으로 인한 산업기반 붕괴, 비싼 물가 등으로 밀수 단속이 중요했다.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출 주도 산업화가 본격화하자 전문성을 지닌 독립 행정기관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렇게 해서 1970년 8월 27일 관세청이 발족했다. 당시 연간 28억 달러였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조181억 달러로 373배가 됐다.

관세청은 개청 이후 50년 동안 수출입 화물의 통관과 관세 부과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최근에는 무역금융 사기 대출을 적발하고,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수출입 기업의 지원대책을 시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통관 지원과 국민 안전 확보에 집중하면서 마스크 수출 규제로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 기여했다. 국제적으로는 지난해 세계관세기구(WCO) 능력배양국장 등 많은 관세 외교관을 배출했다. 한국형 전자통관시스템(유니패스)을 14개국에 수출하고 29개국에 관세 행정 경험을 컨설팅했다.

관세청 제복의 어깨에는 남궁 선생이 보급하고자 했던 무궁화가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계급 표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관문의 최일선에 있는 책임감의 표현이다.

관세청 엠블럼의 푸른 방패와 양팔 저울은 국민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임과 관세 행정의 형평성을 상징한다. 1878이란 숫자는 두모진해관 사건이 있던 해로 관세 주권을 상징한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K-관세 행정의 현장에서 국민과 기업의 안전과 국가 경제를 지켜나갈 것을 다짐한다.

노석환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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