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다주택자 재건축 사려면 공동명의 하라는 '황당 규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년간 23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규제끼리 충돌해 집을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사진은 서울 대표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뉴스1]

3년간 23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규제끼리 충돌해 집을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사진은 서울 대표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뉴스1]

서울 서초구의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노모(47) 씨. 2년 전 같은 단지에 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사시던 아파트를 상속받아 2주택자가 됐다. 그가 부담한 보유세는 2017년 156만원에서 상속받은 2018년에는 1000만원, 지난해 1900만원으로 올랐고 올해는 3700만원 정도 내야 한다.

늘어나는 세금에 고민하던 노씨는 2가구 중 1가구를 팔기로 마음먹고 지난 4월 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계약은 깨졌다. 매수자가 재건축으로 짓는 새 아파트의 입주권을 받을 수 없어서다.

매수자가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면 노씨와 공동으로 지분을 소유하거나 노씨 명의로 된 아파트 2가구를 다 사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씨와 매수자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결국 계약은 엎어졌고 매수자는 노씨를 상대로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 소송을 제기했다. 노씨는 “정부가 다주택자는 집을 팔라고 하더니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대출도 다 막히고 집도 못 팔고 세금 못 내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건 23번에 이른 부동산 대책 속 규제 끼리 충돌이 발생한 탓이다.

노씨의 아파트는 재건축 조합원 1인이 같은 단지 내에 여러 가구를 보유한 가구(과밀억제권역 3가구)만큼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2017년 6‧19대책이 시행되기 전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 보유주택 모두 사야 입주권 확보   

정부는 2017년 6‧19대책을 통해 재건축 조합원 1인이 같은 재건축 단지에 여러 가구를 보유해도 새 아파트를 1가구만 받고 나머지는 현금청산 해야 한다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전에는 보유한 가구 수만큼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었다. 노씨의 아파트처럼 대책 발표 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단지에는 해당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한 같은 해 '8‧2대책'이다. 조합설립인가가 나면 완공까지 집을 팔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의 특성상 조합설립인가 이후 사업 기간이 10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나친 재산권 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결국 정부는 한시적으로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만들었다. 사업시행인가 이후 3년 안에 착공하지 못하면 집을 팔 수 있게 숨통을 터줬다. 노씨가 집을 팔겠다고 나선 이유다.

그런데 또 다른 규제가 그를 가로막았다. 매매 계약이 깨진 앞선 상황처럼 집을 산 매수자가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없게 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다. 같은 재건축 단지 내 여러 가구를 보유한 소유주에게서 일부 가구를 사더라도 대표 조합원은 한명만 선임할 수밖에 없다. 재건축 사업 도중에 조합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같은 단지에 2가구를 보유한 조합원 A가 이 중 1가구를 B에게 팔았다고 하자. B가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A와 아파트 2가구를 공동으로 보유하거나 A의 아파트 2가구를 모두 사야 한다. 노씨처럼 같은 단지에 여러 가구를 가진 다주택자가 집을 처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조합원 한명이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들은 하나로 묶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2가구 중 1가구를 팔아도 지분을 나눠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며 “당초 받기로 한 입주권이 다 나오기 대문에 문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동 보유할 경우 추가 분담금 배분 등 갖가지 문제 

이런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다. 만약 A가 B에게 아파트를 팔더라도 재건축 조합원이 아닌 만큼 강제로 현금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 현금청산 금액이 아파트 매입가격보다 낮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만약 A와 B가 공동으로 보유하더라도 추가 분담금 분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A가 가진 2가구의 주택 크기가 다를 경우 분담금을 배분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A와 B가 공동으로 2가구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다. 재산권 다툼의 가능성이 크고 세금도 얽힌다.

이런 복잡한 문제로 인해 일부 지자체는 이런 유형의 거래를 아예 금하고 있다. 거래 후 매수자가 피해를 보거나 갖가지 분쟁이 생겨서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매수자가 조합원 지위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매도자가 보유한 가구 중 일부만 팔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