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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도권 코로나 위기, 대구의 뼈저린 경험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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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대구의 경험으로 수도권 코로나19 대유행 위기를 살펴보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극적 상황을 절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시민 이동과 접촉 줄이는 게 최선 #서울대병원·민간병원 협력해야

지금 수도권 상황은 확진자가 폭증한 지난 2월 말 대구의 경험과 비교하면 마치 작은 신천지 교회 집단감염 같은 상황이 수십 개가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깜깜이 감염 사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무서운 복병이다.

이제 역학조사는 무력화돼 추적이 어렵고, 표적 봉쇄도 어려운 상황이다. 방역 난이도는 대구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금 단계에서 상황이 통제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 뉴욕과 비슷한 최악의 상황으로 갈 것인가. 너무나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이런 위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있다. 단언컨대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진단 검사와 함께 시민들의 이동·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다. 솔직히 다른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3월 긴박했던 대구 상황에서 시민들은 75%의 시내 이동을 멈췄다. 시외 이동은 90%까지 줄였다. 가장 번화한 대구 동성로에서 인적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령도시 같았다.

지금 수도권에서 사람들의 이동과 접촉을 급격하게 줄이지 않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위기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수도권 주민들이 불필요한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사람이 멈춰야 코로나바이러스도 멈춘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필자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 출장 때마다 느낀 점을 생각하면 우려스럽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 느슨하고 안이해 보였다.

확진자가 지금 추세 이상으로 늘어나는데도 지금의 경각심 정도로 생활하겠다고 한다면, 다음 주면 수도권에 병상이 부족할 것이다. 대구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폭발적인 환자 발생으로 인해 자택에서 대기하는 환자가 생길 수 있고, 심지어 자택 대기 중에 사망하는 비극적 사례도 나올 수 있다.

정말이지 의사로서 그런 상황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너무도 뼈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환자를 실은 수십 대의 앰뷸런스가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해 서울 시내를 배회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감염병 대유행이 바이러스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결국은 인간의 이동과 접촉 확률의 문제다. 방역 당국이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병상 확보 계획을 미리 세웠고, 생활치료센터에 경증환자를 입소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열흘 이상 지속하면 입원 병상과 중환자실이 급속도로 부족해질 것이다.

공공병원은 물론 민간병원도 협력해 입원 병상과 중환자 치료 병상 확보에 동참해야 한다. 늦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최대한 넉넉하게 병상 확보 방안을 세워야 한다. 국립병원의 ‘맏형’ 격인 서울대병원이 앞장서고 민간의료기관들이 참여해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대비에 촌각을 다퉈야 한다.

정부는 민간 의료기관들이 코로나19 환자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 수익 손실 등에 대한 보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낼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감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하는 의료진의 안전과 수당 지급 등 지원 방안은 대구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과 지방은 ‘하나의 상황실’에 같이 앉아 감염 확산 방지와 중증도 분류, 병상 확보, 환자 이송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한다. 감염병 통제는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와 우리들의 의사결정 속도와의 싸움이다. 공문을 발송하는 소통 속도로는 결코 통제하기 어렵다.

시민의 참여와 의료인의 헌신, 정부의 강한 의지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힘이자 무기다. 대구의 뼈저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