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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업] 44년간 벼랑 끝 사람에게 생명존중 마음 전하는 ‘얼굴 없는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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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한강을 찾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한강교량에 설치한 SOS생명의전화. 한국생명의전화가 44년간 펼쳐온 자살예방 활동의 하나다. [사진 한국생명의전화]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한강을 찾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한강교량에 설치한 SOS생명의전화. 한국생명의전화가 44년간 펼쳐온 자살예방 활동의 하나다. [사진 한국생명의전화]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대한민국.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심리·경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거리두기’가 미덕이 되며 느슨해진 사회적 관계망은 자살률 상승으로 이어질까 우려가 커진다.

한국생명의전화 #자살예방 전화상담 108만 건 넘어 #대가 없이 일하는 상담봉사원 큰 힘 #학교·기업에 생명존중교육 실시도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단체가 있다. ‘언제나 옆에 있는 얼굴 없는 친구’를 자처하는 한국생명의전화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지난 1976년 9월 1일 정오, 한국 최초의 전화상담 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44년간 365일 24시간, 전화상담 부스에 상담봉사원이 있었다.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의 1977년과 현재 모습.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의 1977년과 현재 모습.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의 1977년과 현재 모습.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의 1977년과 현재 모습.

한국생명의전화의 누적 전화는 108만 건을 넘어섰다. 1998년부터 시작한 사이버상담도 지금까지 3만2000여 명의 고민에 응답했다. “생명의전화 상담사례를 보면 그 시대상이 보인다”고 할 정도로 사회문제의 최전선에 한국생명의전화가 있었다.

‘24시간 365일 운영한다고 해서 용기 내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어렵다’는 하소연도 있다. 이는 쇄도하는 상담요청 때문이다. 한시도 상담부스가 비지 않도록 상담봉사원을 배치하고 있지만 쏟아지는 수요를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다.

그런데도 44년간 전화상담이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상담봉사원이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벼랑 끝에 선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전화상담 부스에 앉은 상담봉사원이 한국생명의전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힘”이라며 “물리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전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생명의전화가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누적 전화상담 4500시간을 넘긴 이시종 상담봉사원은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 줄 순 없어도 호소하는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자살예방을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전화상담과 더불어 사이버상담, 면접상담과 같이 다양한 상담루트를 운영한다. 또한 한강교량에 ‘SOS생명의전화’를 설치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의 접점을 만들었다. 학교·기업에 나가 생명존중교육을 실시하고, 소방재난본부·법무부와 협약을 맺어 매년 자살예방교육을 시행한다. 현재까지 34만 명이 넘는 청소년 및 성인이 교육을 받았다.

특히 2015년 시작한 청소년 자살예방 교육사업 ‘아이러브유’는 조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전국의 중학교를 찾아가 학급별 수업을 진행한다. 자신과 친구의 강점을 재발견하고 친구가 보내는 자살 위험 신호는 어떤 것인지, 어떻게 친구를 도울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1313개 중학교에서 33만4399명이 참여했다. 국내 중학생 4명 중 1명이 교육을 받은 셈이다.

2006년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자살예방의날(9월 10일)을 맞아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해 질 녘부터 동틀 때까지 함께 걷는 행사를 연다. 메인 코스는 국내 자살률이 감소하기를 바라는 의미로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수’를 환산한 거리를 걷는다. 매년 약 3만 명이 참가, 14년간 29만4000명이 함께했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한 장소에 모이지 않고 언택트로 열릴 예정이다.

올해로 3년 연속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운영지원단’ 수행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부·노동계·재계·종교계·언론계·전문가·협력기관 등 사회 전 분야의 힘을 모아 생명존중문화를 만들고 있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자살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자살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자살위험이 8.4배나 높아 유가족을 위한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을 돕는 것이 자살을 낮추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중앙일보디자인=김재학 기자 kim.jaih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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