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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창대했던 리브라의 시작, 그 끝도 창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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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파커’s Crypto Story]리브라를 통해 전세계 금융 소외계층 17억 명에게 금융 접근성을 제공하겠다” 페이스북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의 백서 초안 내용 중 한 대목입니다. 2019년 6월 최초 공개된 이 백서는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웬만하면 암호화폐 이슈를 크게 다루지 않는 제도권 미디어에서도 리브라 론칭을 주목했죠.  

#시작은 창대했으나 중간이 미약해진 리브라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리브라는 처음과 많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자·마스터카드·이베이·페이팔·우버 등 28개의 쟁쟁한 기업이 총출동했던 리브라 협회는 현재 페이팔·마스터카드·비자·이베이·보다폰 등이 모두 탈퇴한 상태입니다. 이유는 규제 불확실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기업의 빈자리는 현재 쇼피파이(28일 기준 캐나다 시가총액 1위 기업)를 제외하면 대부분 암호화폐 업체들이 채우게 됐습니다. 제도권 기업을 대거 포함시켰던 기존 협회 구성과는 모양이 많이 바뀐 셈입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2020년 4월 들어 백서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업계가 가장 크게 우려했던 것은 ‘은행 없는 은행’을 자처했던 리브라가 지역 단일 화폐를 추구하는 단순 결제 프로젝트로 전락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백서에는 스테이블코인 LBR(리브라)를 법정화폐 바스켓 기반(여러 국가의 법정화폐를 묶어서 연동)으로 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죠. 그러나 수정된 백서에서는 지역 기반의 단일화폐를 이용한 LBR 발행방식을 추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리브라 측은 “기존 발행 방식의 경우 LBR의 유통량이 크게 증가할 경우 제도권의 통화정책을 방해할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단일화폐 기반의 LBR 발행을 추가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법정화폐 바스켓 기반 LBR 발행을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리브라가 스스로 규제 불확실성을 불식시키려면 단일화폐 기반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리브라가 강조했던 또 다른 테마 ‘국경 없는 거래’의 의미가 희석되겠죠. 일각에서는 이러한 리브라의 입장 선회에 “페이스북 리브라가 단순 결제 프로젝트로 전락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규제 당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무허가형(퍼블릭) 거버넌스로의 전환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덧붙였습니다. 기존 백서에서는 허가형(프라이빗) 거버넌스를 운영하다가 시스템이 안정되면 무허가형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리브라는 바뀐 백서 내용에 따라 “기존 중앙화 프로젝트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리브라 중간점검①: 리브라 주춤한 사이 ‘글로벌 결제 공룡’ 움직였다 

그렇다면 리브라는 현재 어느 위치에 서있는 걸까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2019년의 포스가 옅어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그 사이 다른 프로젝트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리브라의 위치 역시 흔들리지 않았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리브라가 주춤한 사이 글로벌 결제 공룡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리브라 협회에서 탈퇴한 마스터카드·비자·페이팔 등의 행보가 매섭습니다. 먼저 마스터카드는 암호화폐 카드 발행 촉진을 위해 관련 프로젝트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마스터카드 기반의 암호화폐 직불카드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비자의 경우에는 크립토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얼마 전에는 블록체인 엔지니어 채용 공고에 나섰죠. 여기에 페이팔은 암호화폐 구매 및 판매 서비스를 직접 지원하겠다는 파격 선언을 했습니다. 이르면 이번 분기 내 서비스를 시행하겠다는 강력한 추진 의지까지 보여줬습니다. 이미 서방 국가의 글로벌 결제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리브라의 자리를 충분히 위협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CEO(최고경영자)가 청문회 당시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경계했던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리브라 협회 단테 디스파르테(Dante Disparte) 부회장도 같은 맥락에서 “다른 결제 회사들이나 셀로(리브라 협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경쟁 조직)와 같은 얼라이언스 그룹이 리브라와 경쟁관계가 됐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중국이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중국은 정부 주도로 중국인민은행·알리페이·위챗페이 등과 연합해 CBDC의 중국버전 DCEP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실험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죠. 위챗페이만 하더라도 2019년 4분기 기준 월간 이용자 수가 8억 명을 넘습니다. 만약 중국 정부 주도로 14억 인구가 디지털 화폐를 의무적으로 실생활에 이용한다면, 마크 저커버크의 우려는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리브라 중간점검②: 규제 리스크, 어디까지 준비하고 있을까

업계 관계자들의 염려와는 달리 리브라는 아직까지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이러한 서비스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국경 간 일률적인 컴플라이언스 제도와 KYC(고객신원확인) 등의 규제를 확립해야 합니다. 특히 국경 간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연동시키는 일이 어려운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이에 대해 디스파르테 부회장은 “국경 간 컴플라이언스에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인허가·VASP(암호화폐 사업자) 범위 등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허가형 거버넌스를 지속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며 거버넌스에 일어나는 변수를 명확히 해야 글로벌 규제를 준수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물론 리브라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금융 소외계층을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컴플라이언스 일치 정도로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규제가 예상되는 국가 바깥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인증이 동시에 이뤄져야 리브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디스파르테 부회장은 “리브라 내부에서 KYC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IRS(미국 국세청)에서도 “암호화폐 암거래 등의 제도권 바깥 영역에 대해 KYC를 기본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에 대한 방안으로 리브라 측은 노비(기존 칼리브라가 리브랜딩된 리브라의 지갑)에 자체 KYC 기능을 탑재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완비되면 국경 간 컴플라이언스 일치는 물론이고, 금융 소외 국가에 기존 은행보다 더 낮은 ‘신원인증 비용’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리브라 측의 계산입니다.

#그럼에도 리브라의 끝이 미약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

예상했던 것처럼 규제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안은 리브라는 이전보다 미약해졌습니다. 파트너사부터 백서 내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축소됐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리브라의 앞날까지 미약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합니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규제 당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지만, 프로젝트 축소로 되레 그러한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블록체인 기반 결제 프로젝트 ‘페이 프로토콜’의 김영일 다날핀테크 사업전략팀장도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리브라의 계획 수정은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금융서비스는 사람들의 습관과 매우 큰 관계가 있다. 은행 없는 곳을 위한 은행이라는 기존의 콘셉트 자체가 금융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서비스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리브라의 타겟층인 금융 소외계층 입장에서는 그러한 서비스가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히려 결제에 초점을 맞춘 지금의 방향성이 역설적으로 금융 소외계층을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그는 “규제 리스크가 적은 특정 분야를 확실히 선점하고 원래 추구했던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는 게 되레 사업적으로 맞는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프로젝트가 범접할 수 없는 페이스북의 강점은 바로 커뮤니티입니다. 현재 페이스북과 그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의 월간 이용자 수만 합쳐도 35억 명이 넘습니다. 세계 인구가 약 78억 명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곧, 어떤 서비스를 붙이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유저가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프로덕트를 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규제 당국과 어떤 식으로든 합의만 된다면 리브라 프로젝트가 무서워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정보 유출·광고 논란·경쟁자 틱톡 등의 등장을 겪으면서 페이스북에게는 변화가 절실해진 상황입니다. 침체와 재도약의 갈림길에 서있는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다시 창대해질 수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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