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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를 다지자] 73. 못믿을 도시락 유통기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가을 서울시 보건위생과 공무원들이 도시락 제조업소와 판매업소를 단속하는 현장에 서울시 식품명예감시원 자격으로 동행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 대표로 감시활동을 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떤 도시락 제조업소에서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밥 도시락을 만든 지 네시간이 지난 때부터 제조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해 유통시한을 8시간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날이 따뜻한데 김밥이 상해 식중독이라도 걸리게 하면 어쩌려고 유통시한을 조작하느냐" 고 따지자 "유통시한을 10시간 이상씩 표시하는 업자도 많지만 김밥이 상하지 않는다" 며 오히려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김밥.도시락 등의 유통시한은 제조시간으로부터 7~10시간으로 규제돼 오다 1999년 2월부터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됐다.

따라서 업계 자율에 따라 제조업자가 유통시한을 임의로 정해 구청에 신고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돼 있다.

봄철을 맞아 많은 사람이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단체 혹은 가족단위로 산이나 들을 찾아 주문 도시락의 수요도 늘게 마련이다.

이 때마다 서울시 보건위생과와 식품명예감시원들은 식중독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도시락 제조업소와 판매업소를 집중 점검한다.

그러나 유통시한이 지났거나 유통시한을 조작한 제품, 보관상태가 나쁜 제품이 늘 적발되고 종사원이 건강진단증을 소지하지 않는 등의 위반사례가 속출한다.

유통시한 표시방법이 제조업소마다 달라 담당 공무원은 알겠지만 소비자는 제대로 알 길이 없다.

판매업소에서 보관온도 및 방법을 잘 지키지 않아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은 제품의 위생상태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먹을거리의 유통시한 준수는 기초 중의 기초다. 유통시한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로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다시 규제를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황선옥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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