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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타고 배설물 속 코로나 퍼졌다···中광저우 감염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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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한 수산물 시장. EPA=연합뉴스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한 수산물 시장. EPA=연합뉴스

 만난 적도 없고, 동선이 겹치지도 않은 사람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옮길 수도 있을까.

환자 대변 속 바이러스 하수도 통해 전파 #침수 때 신발에 묻어 집 안에 들어올 수도 #4월에 "에어컨 감염" 사례 보고한 연구팀

직접 접촉 없이 생활 하수를 통해 코로나19를 전파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중국 보건 당국에 의해 공개됐다.

감염자의 배설물이 포함된 생활하수가 깨진 하수관을 통해 새 나오면서 도로를 오염시키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신발에 묻어 새로운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의 한 시장. EPA=연합뉴스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의 한 시장. EPA=연합뉴스

중국 남부 광둥 성 광저우 시(市)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연구팀은 16일(현지시각)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SSRN)에 발표한 논문에서 "생활하수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보고했다.

환자 분변과 생활하수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구체적인 추적 조사 결과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는 것이다.

다른 건물 거주자에게 전파

미국 필라델피아 하수관. AP=연합뉴스

미국 필라델피아 하수관. AP=연합뉴스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지난 3월 20일부터 4월 14일 사이 광저우 T 시장에서는 코로나19가 집단 발생해 관계자 등 3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4월 4일 시장이 폐쇄됐다.

인구 150만 명의 광저우 시내 도매시장 간에 물품을 운송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A 씨 부부는 3월 27일과 4월 3일 두 차례 T 시장을 함께 방문, 각각 5시간 정도 머물렀다.
이들은 시장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물을 마시면서 여러 차례 마스크를 벗기도 했다.

광저우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사는 A 씨(1번 환자)는 4월 5일 기침과 두통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5일 뒤인 4월 10일에는 남편(2번 환자)도 비슷한 증상을 나타냈다.
A 씨 부부는 4월 13일 지정병원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됐다.

보건 당국에서는 A 씨 부부 주거지를 중심으로 감염자 확인에 나섰고, 이웃 주민 2888명 중에서 6명의 감염자를 추가로 확인했다.
A 씨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4월 16~21일 사이에 증상이 나타났다.

A 씨 부부를 포함한 이들 8명은 서로 인접한 4개 아파트에 살던 네 커플이었고, 8명의 평균 연령은 58세(48~73세)였다.
이들 중에는 A 씨 부부(1·2번 환자)처럼 물품을 운송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거리 환경미화원도 있었다.

중국 광저우 시의 코로나19 전파 사례를 나타내는 지도.

중국 광저우 시의 코로나19 전파 사례를 나타내는 지도.

A 씨 부부는 2층짜리 A 건물 2층에 살았고, 3·4번 환자와 7·8번 환자는 인접한 6층짜리 B 건물 2층과 1층에 각각 살았다.

5·6번 환자는 인접한 6층짜리 C 건물 2층에 살았다.

심층 면담에서 3~8번 환자는 A 씨 부부를 알지 못했고, 만난 적도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7·8번 환자는 3번 환자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적은 있었다.

구멍 뚫린 하수 파이프가 주범

코로나19 감염을 일으킨 구멍 뚫린 하수 파이프.

코로나19 감염을 일으킨 구멍 뚫린 하수 파이프.

연구팀은 생활하수를 통한 감염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A 씨의 화장실 하수관은 지표에서 몇㎝ 떨어진 높이로 A 건물 외벽을 따라 뻗어있었고, 파이프에는 100㎠의 구멍이 나 있었다.

연구팀은 A 씨 아파트 화장실에 물을 붓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하수관 구멍에서 새 나오는 물이 골목길을 따라 건물 A~D 주변에 있는 5개의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관찰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각 확진자의 발병 시점, 공간 분포 등을 바탕으로 1번과 2번 환자가 배출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수에 의해 사례 3~8번 환자에게 전파됐다고 추정했다.

특히, A 씨의 증상이 시작된 때인 4월 5일에는 33.5㎜, 6일에는 38.3㎜의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서 하수관에 더 많은 물이 흐르면서 바이러스에 오염된 하수가 골목으로 더 많이 배출됐고, 하수관에서 나온 오수가 빗물과 섞이면서 골목 전체를 오염시켰을 수도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감염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B 건물과 C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 33명을 대상으로 집중 분석을 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감염은 거리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것과 크게 관련이 있으며, 특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깨끗한 신발로 갈아신거나 신발을 닦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확인했다.

중국 광저우 지역 코로나19 발생과 관련해 환경 시료를 채취한 지점.

중국 광저우 지역 코로나19 발생과 관련해 환경 시료를 채취한 지점.

연구팀은 또 199개 환경 시료를 분석했는데, 25개(13%)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거리에서 수집한 하수 시료와 건물 A·B·C 근처의 하수관에서 면봉으로 채취한 시료와 1~8번 환자 아파트 내부에서 채집된 시료에서 양성 비율이 높았다.

특히, 1~8번 환자와 C건물 비확진자의 자전거 타이어와 신발 바닥에서 채취한 6개 시료 중 4개가 양성으로 나타났다.
반면, A와 C 이외의 다른 건물 아파트에서 수집된 72개 시료는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시료 속 바이러스 RNA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 결과, 1·2번 환자의 아파트 화장실과 신발 바닥 먼지에서 확인된 바이러스와 3~8번 환자 바이러스, 건물 A·B·C 인근 하수 샘플의 바이러스 등이 99.996% 일치했다.
사실상 같은 바이러스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발·자전거가 묻혀 들어와

2011년 7월 갑자기 쏟아진 빗물로 하수가 역류해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일대가 물에 잠겼다. 연합뉴스

2011년 7월 갑자기 쏟아진 빗물로 하수가 역류해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일대가 물에 잠겼다. 연합뉴스

연구팀은 "잠복기를 고려할 때 A 씨는 T 시장에서, 그 남편은 시장 또는 아내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판단됐고, 3~8번 환자는 A 씨 부부로부터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증상이 처음 시작될 때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데, 우연하게도 1번 환자의 증상 발생 당시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A 씨 부부가 배설물을 통해 배출한 바이러스가 4월 5~6일 내린 많은 비로 인해 하수관에서 유출돼 주변 골목을 오염시켰고, 신발 바닥과 자전거 타이어에 붙은 바이러스가 집으로 옮아가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연구는 이에 관한 역학적 증거를 최초로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발 바닥이나 자전거 타이어의 먼지에 있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건강한 사람을 감염시켰는지는 연구팀도 불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먼지 묻은 손으로 코나 입을 만진 게 원인일 수도 있고, 먼지가 집에서 미세한 입자(에어로졸)가 된 다음 호흡기로 들어가 감염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중국의 인구 밀도가 높고 위생시설이 열악한 도시 내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 발생했다"며 "코로나19 발생 상황에서는 하수도 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와 유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부산에 시간당 30mm 이상 강한 비가 내리면서 남구 우암동 일대 하수관이 역류해 덮개가 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15분 기준 부산 남구 누적 일 강수량은 210㎜를 기록했다. 뉴스1

지난 10일 부산에 시간당 30mm 이상 강한 비가 내리면서 남구 우암동 일대 하수관이 역류해 덮개가 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15분 기준 부산 남구 누적 일 강수량은 210㎜를 기록했다. 뉴스1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여름철 장마나 집중호우 때에는 도시 하수관의 역류 현상이 발생하는 만큼 침수지역을 방문한 후 귀가했을 때는 신발이나 자전거 등의 위생 상태에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연구를 주도한 광저우 CDC의 양지콩 박사는 지난 1월 광저우 식당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전파 사례의 원인을 밝혀낸 논문을 4월에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논문에서는 밀폐된 식당의 에어컨 바람이 감염자가 배출한 바이러스를 주변 다른 테이블 손님에게 전파했던 것으로 밝혀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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