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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이런 일도 있네요"···수사중단 권고, 삼성도 놀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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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이날 심의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나서는 위원들. [연합뉴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이날 심의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나서는 위원들. [연합뉴스]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의결했습니다. 비밀투표 결과는 10대 3입니다.”

26일 수사심의위서 무슨 일이 #검찰 “이재용 구속 때 주가 올라” #변호인단 “검찰이 법기술 부려” #검찰 “시세조종 등 부정거래 10개” #변호인단 “정상적 합병을 범죄시” #교수·종교인 등 심의위원 앞 공방

지난 26일 오후 피의자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계속 여부와 피의자 이 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삼성물산(주)에 대한 공소 제기 여부를 논의한 제9회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최종 결론이 발표되자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은 멘붕에 빠졌다. 최근 보름 사이 구속영장 기각, 검찰 시민위원회의 부의 결정, 검찰수사심의위까지 연달아 쓴잔을 마셨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에 놀란 건 ‘특수통 정예 검사’로 구성된 삼성 측 변호인단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계자는 “변호인들도 이 부회장 ‘불기소’ 정도 기대했지 전원 불기소에 이 부회장 수사 중단 권고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며 “임시위원장을 제외한 각계 전문가 위원 13명 중 10명의 눈에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고 비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위원들은 법조계(변호사) 4명, 학계(법학 교수) 5명, 언론인 1명, 사회단체 대표 1명, 종교계 인사 2명이었고 회계 전문가도 있었다고 한다. 특정 사안의 수사심의위 위원은 변호사, 회계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역의 전문가 풀(150~250명)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된다.

집에서 결과 들은 이재용, 담담하게 “이런 일도 생기네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모습. [뉴스1]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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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시민위원회와는 달리 수사심의위 위원은 일반 시민은 아니다.

특히 전원 불기소 및 수사 중단 소식을 자택에서 접한 이 부회장은 직접적 감정 표현 없이 담담하게 “(세상에) 이런 일도 생기네요”라고 말했다고 삼성그룹 쪽 한 인사가 전했다.

26일 대검찰청 15층 소회의실에서 9시간 동안 열린 수사심의위원회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28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그날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2017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사기적 부정 거래(자본시장법 178조)가 되느냐,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에 관여한 증거가 있느냐였다.

당일 오전에 검찰이 먼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 등은 양사 합병 단계마다 시세조종을 비롯한 각종 불법행위가 있었으며 이 부회장이 깊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합병 목적이 사업상 필요가 아니라 오로지 지배권 강화에 있고 몰래 숨기고 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논리였다. 검찰은 “합병 준비, 이사회 결의, 주주총회 통과, 주식 매수 등의 과정에서 10가지가 넘는 부정 거래가 있었고 불법 시세조종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합병 목적은 오직 지배권 강화” 

이재용 불기소 권고

이재용 불기소 권고

오후 2시 넘어 이 부장 등의 특수통 선배들인 김기동(56·21기), 이동열(54·22기) 변호사 등이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주가조작이나 합병 비율 조작이 없는 사기적 부정 거래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자본시장법을 거론하며 “상장사의 합병가액 산정 공식은 이사회 결의일 전날 기준 최근 1개월과 최근 1주일의 (가중산술)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 등 세 가지 주식 가격을 다시 평균 내 결정하는데 만약 그걸 조작하려면 합병 결정 한 달 전부터 주가조작을 해야 가능하다”고 방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상적인 기업의 합병 행위를 범죄시하면 1년에 1500건씩 일어나는 대기업 합병을 다 범죄로 봐야 하느냐”는 주장도 펼쳤다고 한다.

오히려 합병의 직접적인 동기는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원래 삼성도 이런 합병을 원치 않았으나 박근혜 정부 때 기업 규제법이 강화되면서 삼성전자 지분 약화를 걱정해 방향을 튼 것이며 그 과정에 불법도 없었고 숨긴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 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 16부가 합병 비율에 대해 “자본시장법에 의해 산정됐고 기준 주가가 시세조종, 부정 거래 행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합법성을 인정한 판례도 거론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특히 “현대차 수사 때도 합병이 수사 테마 중 하나였고 한솔그룹 때도 자회사 간의 합병, 수년 전 롯데 수사 때도 합병이 문제가 됐다”며 “하지만 론스타 수사 때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사기적 부정 거래로 처벌된 국내 유일 사례인데 그건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후 자회사인 외환카드를 합병하려고 외환카드 감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폭락시키는 방식으로 합병 비율을 조작한 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위원 여러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삼성측 “수사심의위 마지막 기회라 생각” 

검찰은 이른바 ‘프로젝트G’문건을 들며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 경영 승계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 부회장이 특검에 구속됐을 때 삼성 주가가 오른 점을 거론하며 “이 부회장 기소해도 삼성은 잘 굴러갈 것”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이 부회장이 정상적인 영역에서 보고받은 것과 합병 관련해 보고받은 것을 적당히 믹스(섞어)해 호도하는 법기술을 부렸다”며 “한마디로 검찰은 합병 비율 조작을 못 밝혔고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기소는 액면이 안 돼요, 액면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날 심의위원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임하며 수준 높은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원래 30분이었던 질의응답 시간이 1시간30분간이나 이어졌다.

한편 이 부회장 측의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수사심의위 신청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변호인단이 검찰 수사팀을 접촉해보니 기소를 정해놓고 요식행위만 하는 감이 들었다고 하더라”며 “앉아서 기소당하고 마느냐, 아니면 심의위로 가느냐를 놓고 고심할 때 삼성 쪽에서 ‘마지막 기회라면 쓰고 가자’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 부회장이 특검 재판만 3년6개월 받았고 수사부터 재판까지 검찰과 법원 출정 횟수가 68회라고 한다”며 “이 건으로 기소되면 다시 3년6개월 이상 더 끌려다닐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 검찰이 소니를, 미국 검찰이 애플·구글을 1년7개월 이상 수사한다면 그 나라 국민이 납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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