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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죄의식도 없어" 온라인시험 부정행위에 교수들 일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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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중앙포토

서울대 정문. 중앙포토

“쓰레기 같은 짓을 하는 수강생들이야 매 학기 서너명씩 항상 있었으니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단지 최소한의 죄의식조차 없어 보이는 천진난만함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나 할까.”

지난 22일 서울대 경제학과 한 교수가 ‘오픈 채팅방 퀴즈 부정행위 시도에 대한 소회’라는 제목으로 온라인클래스에 올린 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대학가에서 치른 온라인 시험에서 잇따라 부정행위가 벌어지자 교수들이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죄의식 못 느끼나”

부산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안 커피숍에서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부산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안 커피숍에서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22일 계절학기를 시작한 서울대에서도 일부 학생이 부정행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는 '경제수학'과 '미시경제학이론' 수업에서다. 담당 교수는 매시간 출석체크 대신 학생들에게 퀴즈를 풀어내도록 했다. 그러자 21일 한 학생이 내부 게시판에 “매번 수업 중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집단지성으로 해결하실 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먹튀 방지를 위해 말 안 하는 사람, 풀이공유 안 하는 사람 보이면 강퇴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담당 교수는 다른 수강생 제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교수는 “TV 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각종 부정행위는 ‘젊었을 때 그럴 수도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한다”며 “꽤 많은 사람이 죄의식을 전혀 못 느끼는 듯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 교수는 과거 경험을 들어 부정행위에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학생들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문제가 어려우면 시간을 충분히 투입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거나, 모른다고 인정하고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터인데, 친구들끼리 모여서 토의하고 과제를 작성한다”며 “바둑 18급 18명 모여봐야 18급이지. 귀신 씻나락 까먹다가 피자 한 판 만드는 오답을 낸다”고 꼬집었다.

그는 “참여한 사람들 이름을 모두 병기해 단일과제로 제출하면 문제없지만, 단독과제인 것처럼 제출한다”며 “비슷한 과제들을 모두 모아 F 처리했다”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부정행위를 모의한 학생에 대해 “이게 무슨 다윈상 수상자급 똥배짱인가 싶기도 하다”고도 지적했다.

부정행위에 교수들 ‘허탈’

고려대 전경. 중앙포토

고려대 전경. 중앙포토

다른 대학교수도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22일 고려대 국제학부 한 과목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해당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는 “라인 시험도 오프라인 시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봐야 한다”며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은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 3명에게 F 학점을 부여하고 학교에 보고하겠다”라고도 덧붙였다.

고려대 교양 프랑스어 수업에서도 부정행위가 벌어졌다. 담당 교수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시험을 보기로 모의했다는 내용을 제보받았다”며 “여러분의 정직함을 신뢰해 비대면 시험을 위해 애썼는데 정말 허탈하다”고 했다. 이 과목 시험은 대면 시험으로 전환했다.

지난 3일 인하대 공대에서도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해당 교수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참담하게도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아 마음이 우울하다”며 “나는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강의하고 여러분은 정직하게 공부해 꿈을 키워가는 게 맞다”는 심경을 밝혔다.

‘선택적 패스제’ 도입 주장도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신본관 앞에 학생 200여명이 모여 학교 측에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촉구했다. 정진호 기자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신본관 앞에 학생 200여명이 모여 학교 측에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촉구했다. 정진호 기자

앞서 서울시립대·한국외대·중앙대 등에서도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자 이화여대·한양대 학생회 등은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성적표에 시험성적을 표기할지, 과목 이수 여부만을 패스(Pass)로 표기할지를 학생이 선택하는 제도다. 비대면 시험 환경 특성상 기존방식대로 성적을 엄격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양대 학생회 관계자는 “뚜렷한 이유 없이 학교 측에서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며 “총장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홍익대는 지난 5일 국내 대학 최초로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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