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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모국어로 열창…국경 없앤 K팝, 2차 한류 예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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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호 18면

‘탑골 랩소디’의 번안곡 실험

외국인 K팝 서바이벌 오디션 ‘탑골 랩소디’의 가왕들. 왼쪽부터 찐룬지(중국·3대 가왕 및 왕중왕), 아넬 노논(미국·2대), 라라 베니또(스페인·1대), 엔뭉크(몽골·5대). 윗 사진은 유튜브에서 캡처한 경연 모습으로 한국어와 모국어 가사가 같이 나온다. 전태규 기자

외국인 K팝 서바이벌 오디션 ‘탑골 랩소디’의 가왕들. 왼쪽부터 찐룬지(중국·3대 가왕 및 왕중왕), 아넬 노논(미국·2대), 라라 베니또(스페인·1대), 엔뭉크(몽골·5대). 윗 사진은 유튜브에서 캡처한 경연 모습으로 한국어와 모국어 가사가 같이 나온다. 전태규 기자

케이블 E채널의 외국인 K팝 서바이벌 오디션 ‘탑골 랩소디(Top Goal Rhapsody)’가 화제다. 5월 2일 시작과 함께 네이버 실시간 검색과 네이버TV 일간 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주말 예능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K-POP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부제처럼 외국인들이 1절은 한국어, 2절은 모국어로 번안해 부른 뒤  가왕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능통한 한국어에 빼어난 노래 실력은 물론 다양한 언어로 우리 노래를 듣는 느낌이 묘하게 신선하다.

1절 한국어, 2절은 모국어로 불러 #묘하게 신선한 맛, 유튜브서 난리 #베니또·찐룬지·노논 등 가왕 등극 #“가사 몰라도 한국 노래 흥얼흥얼”

특히 어수선한 심사평은 다 빼고 온전히 노래와 가사 자막(한글 및 해당 국어)만 내보내는 유튜브 영상은 날이 갈수록 해당국 댓글과 조회 수가 올라가고 있다. 실제로 1대 가왕 라라 베니또가 스페인어로 부른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는 조회 수가 157만을 넘겼다. 댄스 퍼포먼스 위주의 K팝이 발라드나 트로트로 확장되며 2차 한류라는 높은 파도를 만들어내려는 형국이다.

지난 6일 방영한 왕중왕전에 참가한 5명의 가왕 중 4명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라라 베니또를 비롯해 아넬 노논(미국·2대 가왕), 찐룬지(중국·3대 가왕 및 왕중왕), 엔뭉크(몽골·5대 가왕)다. 한국에 놀러왔다가 가수의 꿈을 실현하게 됐거나(라라 베니또), 외국인 근로자로 들어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엔뭉크),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보고 K팝 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표선수가 됐는가 하면(아넬 노논), 앨범까지 냈지만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경우(찐룬지)도 있다.

가사는 어떻게 번안했나.
▶아넬 노논=나는 ‘파파고’를 많이 사용했다(웃음). 단순히 문자만 옮기면 안된다는 게 문제다. 내가 송라이터이기에, 노래의 맥락을 읽고 그 가수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를 이해해야 진짜 노래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시적이면서 동시에 멜로디와 박자가 맞아야 한다. ‘파파고’로 번역된 문장이 아니라, 노래 자체만 봤을 때도 느낌이 살아있도록 해야 하는 게 참 어려웠다.

▶찐룬지=중국어는 성조가 있어서 음절을 맞추기가 원래 어렵다. 들었을 때 어색하지 않으면서 부를 때 편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도 하며 한 구절씩 썼는데, 곡당 일주일 정도 걸렸다. 특히 한국의 정서인 ‘한’을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를 많이 했다. 이소라의 ‘제발’의 경우 후렴 부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는 직역하니 노래와 안 맞았다. 그래서 애절함을 살리며 중국인들에게도 와닿을 수 있도록 ‘밤바람이 부는 날 나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어주길 바래’로 고쳤다.

드라마를 보고 한국 노래를 접하기도 하나.
▶엔뭉크=처음 알게 된 한국 노래가 드라마 ‘올인’의 OST였다. 드라마 ‘추노’에 나온 임재범의 ‘낙인’도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너무 좋았다. 한국어를 이해하고 들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라라 베니또=나도 ‘응답하라 1988’을 굉장히 좋아한다. ‘청춘’을 듣고 있으면 10살 때 공원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그랬다.

한국어를 알고 나서 노래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면, K팝의 현지화를 위해 한국 가사를 번안한 버전이 더 잘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나.
▶라라 베니또=아니다. 음악은 국제적인 언어다. 가수가 제대로 감정을 전달하기만 한다면 가사는 크게 의미가 있지 않다고 본다. 가사를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BTS나 EXO의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지 않나. K팝에서 한국어가 없으면 그건 그냥 팝이지 K팝이 아니다.

▶찐룬지=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댄스 퍼포먼스가 많은 K팝은 다를 수 있지만, 발라드 같은 노래는 그 나라 언어로 불러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천년의 사랑’이 중국어로 번안된 버전을 알고 있었는데, 원래는 그게 중국 노래인 줄 알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것이 한국 노래가 세계로 넓게 퍼질 수 있는 방법 같다.

▶엔뭉크=음악은 하나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각기 다른 언어로 다 들을 수 있게 한 것이 ‘탑골 랩소디’의 매력인 것 같다(웃음).

‘탑골 랩소디’는 아직 끝이 아니다. 지난 13일 오후에는 새 경연자들이 트로트 무대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다섯 가왕의 꿈도 이제 시작이다. 무대에 서는 기회만큼이나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돼서 행복하다는 모두에게 ‘탑골’은 그들만의 ‘Top Goal’을 위한 발판이다. 엔뭉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동안 자신을 저평가했다. 그런데 ‘탑골 랩소디’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많은 걸 배웠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몽골에 한국 가요를 더 잘 알릴 수 있게된 것도 정말 기쁜 일이다.” 

K팝에 BTS 있지만, 그들의 조상도 있다는 것 알리고 싶었다

제영재 ‘탑골 랩소디’ PD
백지영·에일리·김건모 선곡 많아
좋은 노래는 어느 나라 가도 통해

제영재 PD

제영재 PD

제영재 PD는 MBC 간판 버라이어티쇼 ‘일밤’의 조감독으로 시작해 2009년부터 ‘무한도전’‘라디오스타’ 등을 연출했다. 2017년 YG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올해 초 티캐스트로 이적한 뒤 처음 선보인 프로그램이 ‘탑골 랩소디’다.

어떻게 기획했나.
“1990년대 중후반의 한국 가요가 K팝 한류의 본류라는 점에 착안했다. 원래는 유명 외국인들이 대중음악 명곡을 자기네 나라말로 번역해 가수에 도전하는 컨셉트였다. K팝의 뿌리가 튼튼하다는 걸 세계적으로 알리려는 프로젝트다.  ‘BTS가 있지만, BTS의 조상도 있다!’고 외치는 거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해외에 나가기가 힘들어져 국내에서 하는 외국인 오디션으로 바꿨다.”
한국어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외국인을 뽑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국내 거주 외국인 중 K팝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프로그램 및 채널 홈페이지와 SNS을 통해 노래하는 영상을 보낸 사람들 중 오디션을 봤다. K팝을 커버하는 사람들에게도 연락했다. 외국인 대상 가요제에서 수상한 사람들도 있다.”
노래는 참가자들이 직접 번역했나.
“전부 다 본인들이 했고, 이후 통번역 업체의 검수를 받았다. 선곡도 기본적으로 본인들이 했는데, 90년대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어울릴 만한 음악을 음악 감독이 추천하고 트레이닝시켰다. 선곡이 겹치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 경연자들의 경우 백지영이나 에일리의 노래를 많이 선곡했고, 남자들은 김건모를 많이 골랐다. 가사를 번안한 뒤에는 원곡자 및 작곡·작사가 모두에게 방송 허가를 받았다. 단순 리메이크가 아니라 제작을 다시 하는 개념이라 다 확인을 받았다.”
번안된 버전의 노래를 해외에서 발매하는 등의 수출 계획도 있나.
“코로나가 빨리 끝난다면 현지에 가서 가수로 데뷔한다든지 음반 발매를 한다든지 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당분간은 잘 모르겠다. 만약 코로나가 종식이 안 된다면 시즌2도 아마도 이 포맷으로 가게 될 거다. 아직 시즌1이 마무리된 상황이 아니라서 타이밍을 봐야할 것 같다.”
라라 베니또의 ‘잊지 말아요’는 유튜브에서 157만 뷰가 넘었다.
“처음 방송이 나간 직후에도 조회 수가 3~4만회로 많긴 했는데,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더라. 아마 스페인 쪽 뷰어들이 유입돼서 그런 것 같다. 초창기에는 방송을 본 사람들이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것이 더 많았는데, 갈수록 스페인어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 의도했던 것처럼, ‘좋은 노래는 어느 나라에 가도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K팝의 수출이 이렇게도 될 수 있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메가 히트를 쳤지만, K팝의 인기는 정부나 기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자생적으로 시작된 거다. 대중들이 좋은 콘텐트를 눈치채고 그들이 퍼뜨리는 형식으로 K팝의 세계화가 진행된 거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회사나 방송사 혹은 정부 기관이 푸시한다고 수출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잘 모르는 1990년대나 2000년대 우리 명곡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제공한 다음 대중이 직접 판단하도록 하는 식으로 돼야 한다.”

윤소연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yoon.s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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