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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걸린 동생과 9년 간 70억원 모금…누나는 강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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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바닥이 200평인 건물이 올라갈 거에요. 1층은 의원이 들어서고, 나머지는 요양 시설이에요.”

2일 경기 용인시 모현읍의 낮은 야산자락. 빈 땅에는 여름 풀이 무성했다. 어른 허리만큼 자란 개망초 사이에 서서, 박성자씨는 마치 건물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손짓을 했다. 1000평 규모의 이 땅에는 루게릭 요양센터가 2022년 들어설 계획이다. 100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의료진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지낼 수 있는 시설이다. 2018년 4월, 승일희망재단의 명의로 이 땅을 사들인 건 박성자씨다. 3년 넘게 보건복지부를 설득해, 지난달 초 요양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이끌어냈다.

박성자씨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승일씨(전 현대모비스 농구코치)의 큰 누나이자 비영리법인 승일희망재단의 상임이사이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를 처음 본 건 2005년, 탐사보도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위해 승일씨의 집을 드나들 때였다.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나직한, 두 딸을 키우는 전업 주부였다. 2010년, “큰 누나가 나서서 재단을 세우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양병원 짓는 게 보통 일도 아니고, 아무도 맡으려고 하질 않으니 누나가 나서게 됐다”고, 수화기 너머 승일씨의 어머니가 전했다.

경기 용인시 모현읍의 루게릭 요양센터 부지. 승일희망재단이 이 땅을 사들인 건 2018년이지만, 지난달에야 센터 건립을 위한 정관 변경을 마무리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경기 용인시 모현읍의 루게릭 요양센터 부지. 승일희망재단이 이 땅을 사들인 건 2018년이지만, 지난달에야 센터 건립을 위한 정관 변경을 마무리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요양병원 건립은 2002년 루게릭병에 걸린 승일씨의 오랜 꿈이었다. 루게릭은 온 몸의 근육이 차츰 힘을 잃는 희귀병. 24시간 곁에 간병인이 필요하다. 시설을 지어 환자 가족들을 간병의 굴레에서 구해주고 싶다는 것이 승일씨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2005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눈을 깜박이며 마우스를 움직여 글을 썼던 승일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조차 힘겨워하게 되었다.

2011년 재단을 설립하고도 9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박성자씨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재단이 모은 누적 기부금은 70억원이 넘는다. 유명 연예인이 나서는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두 차례나 열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루게릭병의 고통을 짐작해보는 아이스버킷챌린지도 큰 힘이 됐다. 팔찌나 티셔츠 같은 물품을 팔아 모금을 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꿈만 같던 요양센터 건립이 한발짝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제가 이끄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끄는 일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센터 부지, 공기가 너무 좋아요.
“이 땅을 찾으려고 1년 넘게 발품을 팔았어요. 쥔 돈은 적은데 필요한 조건이 많았어요. 서울의 큰 병원과 너무 멀어선 안 되고, 간병인들을 구하려면 대중교통이 좋아야 하고, 너무 도심이면 민원의 소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땅을 사고 마음이 벅찼을 것 같아요.
“사실 허전한 마음이 더 컸어요. 땅을 살 무렵, 7년 동안 모은 돈이 30억원 남짓이었어요. 땅 사는 데는 10억원 정도만 쓰고 싶었는데, 두 배가 넘는 돈을 썼잖아요. 언제 다시 건축 기금을 모으지, 하는 생각에 막막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그 해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유난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면서, 2018년에만 23억원이 모금됐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누적 모금액이 70억원이라니, 9년 동안 엄청난 성과네요.
“공동 대표로 계시는 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재단도 해를 거듭하면서 역량이 축적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2018년 아이스버킷챌린지 때는 SNS 홍보를 잘한 것 같아요. 얼음물 인증샷이 돌아다닐 때, 이 활동의 취지와 도움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전달했죠. 활동에 참여한 이들이 진지하게 그 의미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모금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땅을 마련한 건 2018년인데 왜 이제서야 건물 설계에 들어가나요.
“저희 재단의 정관 상 환우를 위한 시설을 지어선 안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해석이었어요. 비영리 재단이 건물을 지어 자산을 증식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예 지어선 안된다는 거였어요. 저희는 재단 설립 당시부터 ‘요양병원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알렸고, 서울시 모금 허가도 그렇게 받았는데, 병원은 짓지 말라는 거죠. 2017년 초에 땅을 알아보러 다니는 순간부터 보건복지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3년 동안 세종시를 오가면서 많이 울었어요. 처음부터 재단 설립을 허가하지 말든지, 모금을 허가하지 말지 왜 이런 사면초가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었죠.”
정관 변경이 많이 힘드셨군요.
“기부를 거절 당하면 다른 곳을 찾아갈 수 있는데 이건 오로지 정부만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다른 데서 문제가 발견된 적이 있으니 너희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허락을 안 해주는데 답을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담당 공무원이 ‘토지가 있는 보건소에 가서 우선 해결하고 와라’‘모금을 허락한 서울시에 가서 얘기해봐라’ 하고 일을 넘기기만 할 때, 정말 재단을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차례차례 일을 해결해나가고 계세요.
“가끔 제가 이끄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끄는 일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전업 주부로 17년을 살았어요. 결혼 전에는 프리랜서 번역가였으니 조직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죠. 처음 3년 반이 정말 힘들었어요. 저 혼자였고, 일도 할 줄 몰랐죠. 지금은 실력있는 직원들이 있어 든든해요. 푸르메재단에서 어린이 재활병원을 설립해본 분이 실장으로 오셔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계세요.”
부지를 마련하는 데 20억원을 넘게 쓰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고 말하는 박성자 이사. 하지만 기적처럼 그 한해에 부지 구입 대금과 비슷한 금액의 돈이 모금됐다. 사진 우상조 기자

부지를 마련하는 데 20억원을 넘게 쓰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고 말하는 박성자 이사. 하지만 기적처럼 그 한해에 부지 구입 대금과 비슷한 금액의 돈이 모금됐다. 사진 우상조 기자

승일희망재단은 최근 다른 이유로도 주목받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회계 부정이 이슈가 되면서 승일희망재단의 재정 내역 공개 방식이 화제가 된 것이다. 매달 홈페이지에 1원 단위까지 수입과 지출을 기록해 온 일이 조명받으며 ‘투명한 비영리 법인’으로 기사도 여러 차례 났다. 실제로 재단 홈페이지의 재정ㆍ경영 공시에는 ‘사무실 생수 구입 2만7800원’‘신상품 개발을 위한 동대문 시장 조사 6000원’‘상품 포장용품 구입 5만2820원’ 등의 지출 내역이 빼곡히 적혀있다. 기부자들의 기부금 역시 1원 단위까지 기재돼 있다.

굉장히 자세하게 지출과 수입을 기록하셨네요.
“무엇을 샀는지 적을 뿐만 아니라 왜 샀는지까지 모두 기록하고 있어요. 커피를 샀어도 수익 사업을 위해 샀는지, 기부자 관리를 위해 샀는지를 쓰죠. 사실 이런 식으로 회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어요. 제가 처음에 재단을 내고 나서 어떻게 회계를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일단 가계부 쓰듯이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가계부 쓰는 법을 배운 걸 떠올리며 썼어요. 물론 일일이 기록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고 힘든데, 그래야 마음이 께름칙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제 돈이 아닌 돈을 관리한다는 게 무서웠고, 이렇게 하니까 스스로 마음이 편했어요. 지금은 직원들이 카드를 한번 쓰더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회계를 회계 담당자와 저, 그리고 실장님 셋이서 결재를 하기 때문에 허투루 돈을 쓴다는 건 있을 수가 없어요.”
많은 비영리 단체들이 불투명한 재정 관리로 문제가 되고 있어요.
“비영리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뚜렷한 지침이나 교육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저는 아무 것도 몰라서 투명하게 시작했는데, 회계 전문가들이 보는 기준과 장부 관리법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어요. 일반인의 관점에서 지출과 수익 내역을 세세히 볼 수 있도록 하는 장부를 따로 관리하고, 회계적 관점으로 재정 내역 정리를 따로 하는 거죠. 비영리 단체를 위해서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부가 보급해줬으면 좋겠어요. 영리 기업과 비영리 단체는 재정 관리의 초점이 달라요. 영리 기업은 비용을 어디에 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저희는 수익 내역도 엄청 중요하거든요. 누가 얼마나 기부했는지를 정말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대부분의 단체들이 회계만 담당하는 직원을 채용하기도 어렵고, 한번에 1000만원이 넘는 외부 감사를 자주 받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요양병원을 짓고 싶다는 박승일씨의 꿈은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승일씨가 처음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것은 2002년. 이듬해부터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요양병원을 짓고 싶다”고 밝혀왔으니 햇수로 19년째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요양병원 건립에 매달려온 가족들을 보면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걸까.

“처음에는 동생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에요. 병원을 빨리 지어서 승일이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냥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들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요. 뭐라도 해서 힘을 덜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재단에 가장 필요한 도움은 뭔가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차곡차곡 돈이 모였지만, 아직도 병원 완공이나 운영을 생각하면 갈 길이 멀어요. 기업이 나서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어요. 정의연 기사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되는 게 참 많은데, 가장 신기한 건 어떻게 대기업에서 저런 대규모 후원을 받았을까, 하는 거에요. 저희 모금액 중 기업의 후원은 5%도 되지 않아요. 도와줄 기업이 나선다면, 지금까지 재단이 한 일의 모든 공을 가져가도 좋아요. 기업의 이름을 내세워 센터를 지어도 괜찮아요. 돈이 많은 곳이 나타나서 이 일을 안정적으로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푸르메재단의 넥슨 어린이재활병원처럼요.”

지난해 박성자씨의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소식을 승일씨에게 전하기가 힘들었다고, 성자씨는 말했다.

“저는 승일이가 아프고 나서 신앙을 가지게 됐어요. 죽은 뒤 천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붙잡고 살게 되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승일이가 루게릭 진단을 받은 게 서른 두살이에요. 그 뒤로 줄곧 누워지낸 거에요. 이 다음에 천국이 있다고 믿지 않고서는, 승일이가 너무 가엾잖아요. 아버지의 일도 그렇게 전했어요. 승일아, 우리는 어차피 모두 천국에서 만나는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재단 일을 하는 데 신앙이 도움이 되나요.
“제가 하는 일이지만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신앙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그 분이 지켜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허투로 할 수가 없죠.”

동생의 희귀병, 아버지의 암 소식, 70억원의 모금과 요양센터 건립의 꿈. 박성자씨는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나직하게 전했다. 15년 동안 볼 때마다 강해지는 그를 지켜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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