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석 달 새 63조원 급증…가계대출은 주춤

중앙일보

입력

5월 한 달 동안 기업이 은행에서 끌어다 쓴 대출이 16조원 증가했다.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 4월 증가 규모(27조900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3월부터 석 달 동안 무려 62조6000억원이 늘었다. 이례적인 증가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자금 순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대출 창구. 연합뉴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대출 창구.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20년 5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5월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945조원으로 전월 대비 16조원 늘었다. 5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최근인 2018년 5월(4조9000억원), 2019년 5월(6조원)과 비교하면 확 늘어난 걸 알 수 있다. 대기업 대출이 2조7000억원,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 대출이 13조3000억원 각각 늘었다.

대기업 대출은 전월(11조2000억원)보다 많이 줄었다. 3~4월 대기업 대출이 유독 많았던 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 대출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장 안정화 조치 등으로 회사채 발행 여건이 좋아지면서 대출이 줄어든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4월에 1000억원에 그쳤던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월 3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역대 최대였던 4월(16조600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 13조3000억원 중 개인사업자 대출이 7조7000억원으로 절반 이상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매출이 줄어든 가운데 운영자금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안정 찾은 가계대출,기업대출은 아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안정 찾은 가계대출,기업대출은 아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통계상 기업대출 자체 규모가 단기간에 급증한 건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내놓은 정부와 금융권의 각종 지원책이 집행된 영향이기도 하다. 소상공인 대상 저금리 대출, 중소·중견기업 자금지원, 한국은행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등이다. 코로나19 피해기업에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조치 등도 잔액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2~3월 두 달 연속 역대 최대 규모 증가(9조원대)를 기록했던 가계대출은 증가 폭이 축소됐다. 4월 4조9000억원 늘어난 데 이어, 5월엔 5조원 증가했다. 지난해 5월 증가 규모(5조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급증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가 4월보다 1조원가량 줄었다. 매매·전세 수요 둔화가 원인이다.

지난달 이례적으로 마이너스(1000억원 감소)를 기록했던 기타대출은 한 달 만에 플러스로 전환해 1조2000억원 늘었다. 기타대출은 대부분 신용대출이다. 4월엔 일시적으로 급증했던 주식 관련 대출 수요가 줄고, 가계 소비지출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 있었다. 한은 관계자는 “5월에도 가계의 소비지출 둔화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통상 5월에는 4월보다 기타대출 증가 폭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도 가정의 달 관련 계절적 자금 수요가 증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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