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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의료 환경, 인간중심으로 바꿔야 웰다잉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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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웰다잉 시민운동 정책위원장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웰다잉 시민운동 정책위원장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감염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이 저변에 깔려있다. 지구촌 곳곳에 퍼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1만명 이상이 감염돼 이미 266명이 숨졌다.

77%가 생애 마지막을 병원서 맞아 #병원, 치료행위 너머 웰다잉 봐야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라도 한국의 80세 이상 초고령층은 200만명에 이르고 연간 사망자도 30만명을 넘는다. 연간 사망자가 76만명에 이르는 ‘다사(多死)사회’로 가고 있다. 따라서 잘 사는 것(웰빙) 못지않게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웰다잉)이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 한국인은 대부분(77%) 병원에서 치료 실패로 죽음을 맞는다.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14%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웰다잉은 인간 중심의 보건·의료 환경 전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병원의 의료행위는 생명을 살리는 최선의 치료행위(웰빙)로만 인식되고 있을 뿐 치료가 더는 불가능할 때 환자가 어떻게 자기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웰다잉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의료인은 최선의 치료가 사명이라 치료가 더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환자나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고 치료 효과도 없는 연명 의료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나 가족들도 의료인이 더는 치료 효과가 없다고 알려도 중환자실에서 마지막까지 연명 의료를 시행해야 효도를 다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은 부모의 죽음을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다 보니 그러한 연명 의료가 환자의 뜻인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라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첫째,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는 죽음을 준비할 소중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임종 과정에서 신체적 고통은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 때문에 의료인의 증상 완화 등 의료적 케어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죽음 맞이는 신체적 고통의 완화 그 이상이다.

사회적으로 꼭 하고 싶은 일(버킷리스트)도 해야 하며, 심리적으로 화해와 용서 시간도 필요하며, 영적인 성숙도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료인의 최선의 치료가 환자의 품위 있는 마지막 삶을 짓밟을 위험이 있다.

둘째, 이러한 과잉 의료로 인해 국가적으로 막대한 의료비가 낭비될 수 있다. 통상 한 사람이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25%가 사망 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지출된다. 65세 이상 사망자의 사망 전 1년간 국민건강보험 의료비가 3조원(2015년)을 넘는다. 연명 의료 중단으로 절약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금이 적어도 1조원에 이를 것이다.

과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고통이 없는 죽음, 가족이나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집에서 가족 앞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꼽는다. 이를 고려하면 신체적 고통의 치유만을 위해 황량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영양급식관을 콧줄로 넣고 진통제를 맞으며 희미한 의식으로 맞이하는 죽음이 결코 좋은 죽음일 수 없다.

2016년 2월 공포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웰다잉의 초석인 이유다.

이 법에 따라 현재 60만명 이상이 자신의 연명 의료 결정을 위한 사전의향서를 작성했고, 5만여명이 실제 가족회의 및 계획서를 통해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등 웰다잉 문화가 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스피스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취약계층의 웰다잉을 위한 지원이 숙제로 남아 있다. 더불어 유산 처리, 정신적 유품의 정리, 장례, 유족 치유 등 그동안 간과되었던 법제도 개선과 문화 확산도 필요하다.

노년뿐 아니라 중장년·청년·청소년에 이르는 다양한 생애주기에 따른 죽음 교육도 제도화해야 한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문턱에서 웰다잉은 이제 웰빙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국정과제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웰다잉 시민운동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