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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펀드매니저 자격증 과정에 블록체인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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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고란의 어쩌다 투자]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꼭 따야하는 자격증이 있습니다. ‘투자자산운용사(Certified Investment Manager)’입니다. 각종 자격증 관련 홈페이지는 ‘유일한 펀드매니저 자격이므로 지속적인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됨’이라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자격증을 관리하는 금융투자협회에 물어보니 현업에서 일을 하려면 반드시 이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관련된 업무를 하려면 2년마다 한 번씩 사이버 보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펀드매니저 자격증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느냐고요? 놀랍게도, 5월 21일까지 수강을 완료해야 했던 이번 사이버 보수 교육에 블록체인 관련 강좌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펀드매니저 자격증 강좌에 블록체인이 나왔다

한국의 여의도로 상징되는 투자업계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보인 게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2019년 9월 말에는 ‘블록체인의 이해’라는 일주일짜리 교육과정이 오프라인으로 개설됐습니다. 금융투자회사 데이터 처리 관련 담당자, 전산 관련 업무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관련 기본지식을 교육했습니다.

이번 교육이 눈길을 끄는 건 데이터 처리 등 전산 관련 담당자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가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펀드매니저는 고객을 대신해 자산운용을 전담하는 사람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보자면 3개 매수 주체 가운데 하나인 기관입니다. 기관이 블록체인을 공부한다니, 암호화폐 시장에 이른바 기관 자금이 들어오는 거 아니냐는 기대감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자산운용사 보수 교육은 총 10개의 강좌로 이뤄졌습니다. ①법규정 해설, ②자산운용업 트렌드, ③직무윤리, ④신금융상품 동향, ⑤사례로 알아보는 분쟁조정, ⑥한국 경기순환 읽는 법, ⑦연준의 정책금리 변경과 경기순환 등 7개 강좌는 펀드매니저 보수교육에 있을 법한 내용입니다. 달라진 건 마지막 3개 강좌입니다. ⑧블록체인의 원리와 구조, ⑨블록체인의 진화, ⑩블록체인의 미래 등입니다.

#강좌는 베이직&아웃데이트

8번째 강좌 ‘블록체인의 원리와 구조’의 학습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비트코인의 탄생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원리와 구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등입니다. 이런 학습목표를 위해 학습할 내용은 ^화폐의 역사와 기초개념, ^비트코인의 탄생, ^비트코인의 원리와 구조입니다. 

사실, 진성 ‘코인러’라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남태평양의 얍(Yap)이라는 섬에서는 돌덩어리가 화폐로 쓰였다는 옛날 이야기를 꺼냅니다. 비트코인의 탄생의 배경이 된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고 설명하고요. 총 발행량이 2100만개로 ‘프로그래머블’ 하게 정해졌다는 얘기도 합니다. 발행량을 한정하기 위해 반감기가 있다는 내용도 덧붙입니다. 재밌는 건 강좌 말미에 열심히 수강을 했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퀴즈 문제가 3개 나오는데,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이겁니다. ‘다음 중 비트코인의 발명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의 국적은?’. 

9번째 강좌는 ‘블록체인의 진화’입니다. ^비트코인의 도전자들 ‘알트코인’, ^ICO(Intial Coin Offering), ^2세대 블록체인 등에 대해 설명합니다. 강좌를 녹화한 시점이 대략 2018년 상반기쯤이 아닌가 합니다. ICO의 최신 트렌드로 리버스ICO를 설명하고(리버스ICO가 각광받던 시기가 2018년입니다), 2세대 블록체인으로 이더리움을 비롯해 스팀잇ㆍ파일코인ㆍ시빅ㆍ팩텀 등을 언급합니다.

10번째는 ‘블록체인의 미래’입니다. 1)‘중국의 역습’을 얘기하면서 네오와 퀀텀에 대해 설명했고, 2)‘네임드 개발자에 기대’라는 제목으로 이오스(댄 라리머)와 카르다노(찰스 호스킨슨) 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3)‘기업을 위한 블록체인’으로 프라이빗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차이를 거론하면서 리플을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대표격으로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4)‘한국 블록체인의 미래’를 논의하면서 정부정책과 함께 ‘뱅크사인’을 거론했습니다. 뱅크사인은 요즘 카카오페이인증이나 이동통신사 중심의 패스 등과 함께 공인인증서 폐지로 주목받는 민간 인증수단입니다.

#이런 거 안다고 비트코인 잘 투자할 수 있을까

강좌 내용이 약간은 실망스럽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인데다가 너무 ‘옛날’ 얘기입니다. 2018년이면 2년 전에 불과한 거 아니냐 싶지만, 코인판의 하루는 현실 세계의 한 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변합니다. 2년 전이면 정말 옛날인 거죠.

일반인 대상이라면야 모를까 이런 강의를 펀드매니저가 배워서 실제 투자에 활용한다면 문제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암호화폐 벤처캐피탈(VC)의 최신 트렌드를 알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2년 전 얘기라뇨. 금융투자협회에 강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강좌 내용만큼 실망스럽습니다.

금투협 관계자는 “비트코인 투자 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강좌는 아니다”고 선을 긋습니다. 상식선에서 알아야할 내용을 넣은 것뿐이며,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혹여나 투자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개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 개설했다고 합니다. 펀드매니저 교육 강좌에 블록체인이 들어갔다고 해서 비트코인, 나아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기관들의 투자가 성큼 다가왔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Rani’s note 디지털 금융의 바람이 분다, 약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진 건 분명합니다. SK증권의 달라진 명함 뒷면에는 회사의 슬로건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디지털 금융 플랫폼, SK증권’. 증권사인데 스스로 ‘디지털 금융 플랫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물론, 현재 SK증권이 디지털 자산과 관련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미래 방향을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 잡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증권사, 게다가 SK증권 같은 중소형 증권사 입장에서는 지금의 비즈니스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고 깨달은 겁니다.

분명,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정통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가 디지털 자산 전문운용사(피델리티 디지털 에셋)을 설립하고,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뉴욕증권거래소)의 모회사(ICE)가 디지털 자산 투자 플랫폼(백트)를 만들고, 굴지의 투자은행이 자체 스테이블 코인(JPM코인)을 만드는 시절입니다. 국내에서도 아주 약하긴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산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릅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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