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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범의 문화탐색

뉴노멀 시대의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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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새로운 세기를 위한 새로운 미학을 찾는 데 따르는 문제들은 벨기에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앙리 반 데 벨데와 독일 외교관인 헤르만 무테지우스 사이에 벌어진 의견 대립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두 사람은 모두 미술가와 제조업자들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 1907년에 결성된 독일공작연맹의 회원들이었다.”(페니 스파크, 『20세기 디자인과 문화』) 마지막 장식미술 양식인 아르누보의 대표 작가이자 이론가였던 반 데 벨데는 예술가의 개성을 강조하였다. 그에 반해 무테지우스는 새로운 시대의 조형은 산업화에 걸맞게 표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둘의 의견은 1914년 뮌헨총회에서 충돌했다.

현대디자인 규범 표준화 #코로나로 공간감각 변화 #변화가 빚어낼 디자인은

흔히 ‘표준화 논쟁’이라고 불리는 대립에서 승자는 무테지우스였다. 사실상 승리는 결정되어 있었다.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시대에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반 데 벨데는 19세기적인 예술가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전통적인 수공예는 동일한 제품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계생산 시대의 제품은 부품에서부터 표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작은 레고 블록을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무한대에 가까운 형태가 만들어지듯이, 현대 디자인은 조형 단위의 표준화를 통해서 제품의 다양화를 꾀했다. 이것은 확실히 수공예와는 다른 방법이었다.

독일공작연맹은 독일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디자인 진흥단체로서, 연맹의 주요 인물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나중에 바우하우스를 설립함으로써 현대 디자인의 모델을 완성하였다. 이처럼 독일공작연맹의 가장 큰 공헌은 현대디자인의 방법론을 정초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20세기 디자인의 규범(노멀)이 되었다.

“만약 디자인이 평범한(normal) 것이 된다면 멋지지(super) 않을까?”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한 식당. [사진 익산시]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한 식당. [사진 익산시]

일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와 영국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은 『슈퍼 노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슈퍼? 노멀? 그렇다. 슈퍼 노멀은 ‘매우’ ‘평범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 주변에 보이는 평범한 물건들에서 디자인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병따개·클립·재떨이 같은 친숙한 물건들은 얼마나 평범한가. 그러나 그런 물건들의 평범함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는 일찍이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예(民藝)’를 통해서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독일공작연맹의 규범과는 별개로, 현대 디자인은 비범함을 추구한다. 소비사회의 디자인은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은 팔리지 않는다. 소비자의 눈에 띄는 비범한 디자인만이 팔린다. 이런 현실에서 후카사와와 재스퍼는 정반대로 평범한 디자인을 주장한다. 그것은 물론 그들이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비범한 것은 평범해지고, 평범한 것은 비범해지는 역설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현대 디자인에서 평범함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강한 양념 맛에 질린 사람들이 재료 자체의 순수한 맛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범함의 식상함에 대한 단지 반대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독일공작연맹은 디자인을 생산의 합리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았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새로운 규범(뉴노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무엇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규범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이 디자인도 변화시킬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풍경의 하나는 칸막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 식당이나 도서관 등에서 칸막이가 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 칸트가 말했듯이 시간과 함께 공간은 인간 인식의 선험적 형식이다. 바이러스는 거리 두기와 칸막이를 통해 우리의 공간 감각을 뒤바꾸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어떤 조형적 형태를 빚어낼지는 현재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공간 감각의 변화가 뉴노멀의 조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제 디자인은 지난 한 세기의 규범과 비범과 평범의 시대를 지나 다시 새로운 규범을 찾아가야 할 상황에 있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