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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56% 상승 이끈 동학개미…다음 전투 상대는 ‘시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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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호 12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이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증시는 2~3월 급락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증시의 성과가 단연 뛰어나다. 3월 저점 기록 이후 5월 7일 종가 기준 상승률은 코스닥 56%, 코스피 32%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 20대 주가지수 중 상승률 기준 코스닥은 2위, 코스피는 4위 수준이다.

‘공포’ 속 24조 순매수 스마트 개인 #급락 시장서 재미 본 이후 조급증 #신용잔고 늘고 원유ETN 등 투자 #코스피 1900선, 가격 메리트 희석 #기다림의 시간 견뎌야 투자 성과 #내 종목 안전성·배당 등 따져봐야

#이런 반등세를 이끌고 있는 일등공신은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가들이다. 개인투자가들은 외국인들의 줄기찬 매물을 받아내면서 상승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외국인투자가들은 코스피에서 22조8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1992년 주식시장 대외개방 이후 가장 강도 높은 매도 공세다. 개인투자가들이 24조4000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외국인의 매물을 소화했다. 범상치 않은 것은 주식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개인투자가들의 자금 유입 규모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27조2000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이를 포함해 코로나19 발병 이후 총 44조원의 개인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자금 유입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불가’한 엄청난 규모다. 과거 주식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도 월간 기준 5조~6조원이 들어오는 정도가 최고치였다. 개인 직접투자뿐만 아니라 주식형펀드로 범위를 넓혀봐도 마찬가지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 2006~2007년의 주식형펀드 열풍이 불었을 때도 요즘과 같은 강도의 자금 유입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직·간접투자를 막론한 한국 증시 월간 단위 자금 유입 상위 10대 사례 중 세 번이 최근에 기록됐다.

자금 유입 규모도 이례적이지만, 최근의 개인투자가들은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행태를 나타내고 있다. 예전에는 주가가 많이 오른 이후 후행적으로 주식투자 붐이 일었지만, 최근에는 급락 국면에서 뭉칫돈이 들어왔다. 또 최근 개인투자가들의 직접투자자금 유입 규모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전문가들이 돈을 대신 굴려주는 주식형펀드에서는 오히려 순유출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국면에서 5조2000억원이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빠져 나갔다. 개인투자가들은 주가가 오른 다음에 뒷북을 치기보다 주가가 싸졌을 때 매수하는 선제적 투자, 전문가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가 직접 투자하는 모습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의 개인투자가들은 ‘스마트 개미’로 불리기도 한다.

주가가 크게 하락한 국면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는 사실은 궁극적인 투자의 승률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다만 수익에 대한 조급증이 느껴진다는 점은 조금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몇해 전의 비트코인 열풍, 가격이 조금만 떨어져도 신규 매수세가 유입되곤 했던 얼마 전까지의 주택시장에서 나타났던 것과 비슷한 투자심리를 읽을 수 있다. 외상으로 주식을 사는 신용잔고가 최근 한달 사이 40%나 급증해 9조원을 넘어섰고, 대박과 쪽박을 오가는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에도 기록적인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만, 조급함은 투자자들이 늘 경계해야 할 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투자는 ‘타이밍’이 아닌 ‘시간’을 사는 행위다. 주가의 저점과 고점을 정확히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언컨대 어느 누구도 이를 알 수는 없다. 저평가된 자산을 사서,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투자의 본질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짧으면 좋지만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주식 투자에서 배당은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다.

개인투자자 투자금 유입 상위 10대 사례

개인투자자 투자금 유입 상위 10대 사례

지난 2~3월과 같은 급락은 10년에 한 번 정도 오는 대조정이었다. 좋은 종목, 나쁜 종목 가리지 않고 모두가 동반 급락했기 때문에 투자자에게는 한편으론 좋은 기회였다. 주가 급락 국면에서 역발상으로 공포를 매수했던 개인투자가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주식시장은 나름의 합리성이 작동하는 곳이기에 절대 저평가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의 반등으로 코스피가 1900선에 올라오면서 저평가 메리트는 크게 희석됐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개인투자가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삼성전자다. 복잡한 분석에 앞서 위기는 늘 기회였다는 학습효과가 작용하면서, 구애의 대상으로 오랜기간 동안 검증된 한국의 대표주 삼성전자가 낙점됐다. 삼성전자를 매수하는 대중들에게서는 ‘강남 아파트 불패’와 비슷한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반등 국면에서 삼성전자의 상승률은 코스피 상승률에 미치지 못했다. 시가총액 300조원을 넘나들고 있는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 무거운 주식이다. 삼성전자야말로 장기간 보유해야 보답을 받을 수 있었던 주식이다.

3~4월의 반등 장세에서는 단순 낙폭 과대주가 가장 많이 올랐다. 많이 떨어지면 반등도 크게 나타나곤 하는 가격의 복원력이 작동한 결과이지, 기업 가치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이뤄진 결과는 아니다. 내가 보유한 종목이, 혹은 투자하려고 하는 종목이 실물경제의 심각한 후퇴라는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지, 배당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투자의 본질은 일시적 변동성이 아닌 시간을 사는 데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개인 투자자들, 낙관론에 휩싸여 뒷북 일쑤

한국 가계는 주식투자에서 집단적 성공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4~5년 주기로 주식투자 열풍이 불었지만 주식시장으로 가계자금이 유입된 직후 약세장이 나타나면서 손해를 보곤 했기 때문이다.

1차 펀드붐은 1994년 1월~1995년 1월에 나타났다. 외국인에 대한 시장 개방으로 주가가 상승하던 강세장이었는데, 당시 6조1000억원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주식형펀드로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주식시장이 중장기 바닥을 형성하고 17개월이 지나고, 코스피는 바닥 대비 106% 상승한 이후부터였다. 가계자금 본격 유입 직후 시장은 하락세로 반전,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지는 장기 약세장에서 투자자들은 참혹한 손실을 경험했다.

2차 펀드붐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2000년 4월에 나타났다. 이 기간에 66조8000억원이 유입됐다. 애국심에 호소했던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으로 대표됐던 당시에도 가계자금은 코스피가 바닥에서 100% 상승한 이후 유입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초기에는 이익을 봤지만 뒤이은 IT버블 붕괴에 따른 시장 폭락으로 역시 큰 손해를 피하지 못했다.

3차 펀드붐은 2004년 11월~2008년 8월, 총 96조9000억원이 유입됐다. 이 때도 바닥에서 71% 상승한 이후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립식 투자로 대표되는 장기투자 문화가 도입되면서 매우 장기간에 걸쳐 자금이 유입됐다. 그렇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가 불거지기 직전인 2007년에만 66조원에 이르는 자금이 집중 유입됐다. 특히 중국 펀드에 대규모 자금이 몰렸는데, 중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의 주식투자 열풍은 주가가 바닥에서 크게 상승한 이후 나타나 상승 사이클의 고점 부근에서 주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주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기는 게임이지만 반대의 행태가 반복됐던 셈이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속성이다. 투자는 미래를 예측해야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투자자가 경험한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이다. 주가가 상승하면 낙관론이 많아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비관론이 득세하는 것도 이런 인간의 인지적 속성이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최근 개인투자가들의 행태는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주가 급락 국면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고, 투자도 간접투자가 아닌 직접투자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 실패의 경험에 따른 학습효과,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자산을 늘려주지 못했던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이 코로나19 국면에서의 직접투자 붐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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