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환자들 서러운 ´소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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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글루코세레브로사이드란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 관절통.빈혈 등에 시달리다 심해지면 뇌신경장애로 생명까지 잃게 되는 고셔병.

우리나라에 있는 환자를 모두 통털어도 24명 밖에 안되는 희귀질환이다. 문제는 유일한 치료제인 세레자임의 1년 약값만 2억5천만원에 달한다는 것. 극소수의 환자만을 대상으로 소량 생산하는데다 전량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현재 약값의 80%를 의료보험에서 부담한다. 나머지 20%가 환자의 몫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러나 이젠 이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기초생활보장법에서 희귀질환자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고셔모임환자대표 문정학씨는 27일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희귀질환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 심포지엄´ 에서 "현행기초생활보장법 대상자 선정기준은 15평 이하의 주거환경 등 경제적 조건만 고려대상" 이라며 "약값으로 가산탕진이 확실한 희귀질환자들도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 을 주장했다.

현재 한시적 의료보호환자로 80%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기초생활보장법의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다는 것.

7월부터 시행되는 의약분업에서도 희귀질환자들의 권익은 철저히 외면됐다.

한국베체트환우회 대표 신현필씨는 "7월부터 시행될 의약분업의 예외조항에서 에이즈나 나병은 포함된 반면 희귀질환은 빠져 있다" 며 "희귀질환자도 병원 외래에서 바로 약을 조제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 고 요청했다.

현행 의약분업안대로라면 병원 진료후 약을 받기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를 갖춘 약국을 찾아 헤매야한다.

동네의원 등 1차진료기관을 먼저 거쳐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다음 종합병원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희귀질환의 특성상 전문적인 치료는 일부 대형종합병원에 한정돼 있으므로 희귀질환자는 진료의뢰서가 없어도 바로 종합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현행 의료법을 고쳐야한다는 것.

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 김현주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 수가 2만명 미만의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정의한다" 며 "이들 희귀질환을 모두 합치면 전체 질환의 10%나 된다" 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희귀질환자 역시 비슷한 처지의 환자끼리 모여 동병상련의 기회를 갖고 나아가 권익증진을 위한 압력단체를 속속 결성하고 있다.

현재 한국고셔모임회 등 20여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지난해 희귀의약품 공급을 위해 희귀의약품센터를 설립해 운영중이나 희귀의약품 지정에 5개월 가량 시간이 걸리고 10만달러 이하의 수입실적인 품목이 전체 79개 중 65개에 달하는 등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

보건복지부 질병관리과 이덕형과장은 "44개 질환을 희귀질환을 선정해 국가에 중점관리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아직 환자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조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 임을 실토했다.

문제는 경제논리. 단지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희귀질환자들에게 예외적으로 의료보험혜택을 무한정 늘일 수는 없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비교해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는 것. 그러나 희귀질환은 경제논리보다 사회복지와 인권차원에서 다뤄져야한다는 것이 희귀질환자들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근육병 환자의 어머니는 "국민소득 몇백달러가 높은 것을 자랑하기보다 희귀질환 등 소외계층의 아픔을 아우를 수 있는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고 말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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