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야, 휴양지야…美대학 호화시설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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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치스 국립공원의 바위산을 옮겨다 놓은 듯한 5층 규모의 암벽등반용 인공벽이 있고, 근처엔 야자수와 조형용 돌로 둘러싸인 실외 수영장이 있다.

"모두들 마치 휴양지처럼 보인다고 말하죠." 미국 휴스턴대의 캠퍼스 레크리에이션 담당자인 캐시 안치비노가 올해 5천3백만달러(약 6백36억원)를 들여 새로 설립한 건강센터를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최근 미국 대학들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호화스러운 부대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미국 뉴욕 타임스가 지난 5일 보도했다.

위스콘신대 오슈코시 캠퍼스에선 학생들이 마사지와 손톱.발톱 관리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워싱턴주립대는 교내에 53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서부지역 최대 규모의 자쿠지(공기방울이 나오는 욕탕)를 자랑하고 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대의 학생들은 골프 시뮬레이터를 통해 52가지 코스를 선택해 골프 연습을 즐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학생회관엔 무도장이 두 곳이고 아트 갤러리가 세 곳 있으며 서라운드 사운드 시설을 갖춘 영화관도 있다.

도롱뇽이 기어다니는 열대 생태계 시설과 살아 있는 산호초가 있는 염수 수족관도 빼놓을 수 없다. 서던 미시시피대는 굽이치는 물줄기와 미끄럼틀, 그리고 일광욕을 즐기는 동안 등 뒤로 시원한 물이 흐르는 물 갑판이 갖춰진 수상공원을 구상 중이다.

캠퍼스의 고급 리조트화 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빌려쓰고 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인베스터스 서비스'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들이 올해 첫 3분기 동안 발행한 채권은 1백20억달러로 3년 전 같은 기간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같은 경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새 학생회관이 들어설 버몬트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버몬트의 자연 경관이 좋아 이곳을 택했다"며 "새 학생회관은 지나치게 호화스럽고, 결국 비싼 학비만 더 올라갈 것"이라며 불평했다.

대학의 학비와 등록금 인플레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한 캘리포니아주의 하워드 매케온 하원의원(공화)은 "누구나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자기 방에 DVD 플레이어를 놓고 자란 세대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 같은 시설은 사치가 아닌 필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워싱턴주립대는 2년 전 새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연 후 학교 역사상 최고 성적의 신입생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또 동창생들이 '정말 돈이 필요해 보이는 허름한 시설보다 자기 이름을 걸기에 그럴듯한 곳에 기부금을 더 내는' 현실도 이 같은 열풍에 부채질을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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