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세기 의료인물] 故 서병설 전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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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봉투를 갖고 오지 않아 선생님께 꾸중을 듣곤하던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학창시절 추억. 그러나 올해부터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한 집단기생충검사가 폐지됐다.

학생들의 기생충감염률이 71년 84%에서 97년 2.4%로 격감했기 때문이다.

5, 60년대 한국은 기생충 왕국이란 오명을 쓸 정도로 심각한 감염수준을 보였다.
4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한 회충의 충란양성률이 무려 83%에 달했을 정도. 당시 인구는 2천만명이었지만 회충은 5~10억마리가 한국인의 장내에 기생하고 있다는 미군의 보고도 있었다.

매년 두차례 구충제 복용은 한국인의 연례행사였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만에 한국은 기생충박멸에 가장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故 서병설(徐丙卨) 前서울대의대교수는 기생충 박멸에 가장 공로가 큰 인물로 손꼽힌다.
54년 국내최초로 서울대의대에 기생충학교실을 개설하는 등 한평생 기생충 연구와 박멸사업에 공헌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대변검진을 시작한 것도 그가 기생충박멸협회장으로 있을 때 도입한 아이디어. 집단대변검진은 가장 성공한 기생충박멸사업으로 인정돼 외국 유명 기생충학 교과서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으며 중국 등에도 우리의 노하우가 전수되기도 했다.

徐교수는 64년 뱀을 생식할 때 나타나는 복통이나 설사가 기생충에 의한 것임을 세계최초로 발견하고 이를 서울주걱흡충으로 명명했다.
82년 전염경로와 인체감염사례까지 완벽히 입증해내는데까지 성공했다.

제주도에 유행했던 사상충(絲狀蟲) 도 그가 밝혀낸 업적. 그는 사상충이 도고숲모기란 모기에 의해 매개되는 기생충 질환임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대대적인 박멸사업을 통해 현재 사상충은 자취를 감춘 사태. 이 공로로 그는 76년 중앙일보에서 수상하는 중앙문화대상을 받았다.

45년 서울대의대 졸업후 84년 서울대의대 학장을 역임하고 91년 불의의 폐암으로 별세할 때까지 ´한국인에게 흔한 기생충은 한국인의 손으로 찾아내 박멸해야한다´ 는 일념으로 연구에 몰두했다는 것이 그를 기억하는 후학들의 전언이다.

현재 선진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기초의학이지만 기생충학만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20여종의 장흡충을 찾아내 세계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하는 등 선진국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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