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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후 가정폭력 줄었다?…"신고 못하는 위험상황일 수도"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뒤 국내 가정폭력이 신고 건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국가들에서 가정폭력 신고가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112로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4만5065건이다. 지난해 신고 건수가 4만7378건이었던 것과 비교해 4.9% 감소한 수치다. 다만 가정 내 아동학대 관련 신고 건수는 지난해 1708건에서 올해 1891건으로 10.7% 증가했다.

줄어든 가정폭력 신고 건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줄어든 가정폭력 신고 건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가정폭력 신고가 줄어든 것은 대구·경북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2월 한 달간 대구경찰청과 경북경찰청에 신고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1696건이었는데 올해는 5.8% 감소해 1598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청 가정폭력계 관계자는 “가정폭력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며 "우리도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발원지는 가정폭력 2배로 

이런 현상은 코로나19가 유행한 뒤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증가하는 해외 국가들의 현상과 반대의 모습이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후베이성의 한 비정부단체(NGO)에 따르면 후베이성이 봉쇄된 2월 한 달간 가정폭력은 전년 대비 2배 가깝게 증가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사람들이 집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경제적 손실'을 가정폭력 급증 요인으로 꼽았다.

가정폭력 이미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가정폭력 이미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프랑스 정부도 "지난달 17일 전국 이동금지령을 내린 이후 프랑스 내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프랑스 정부는 약국에서 가정폭력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가정폭력 예방조치에 나섰다. BBC에 따르면 영국과 북아일랜드에서도 최근 이동제한령이 시행된 후 가정폭력이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같이 있으면 신고 못 해" 위험신호일 수도

전문가들은 "이 통계만으로 가정폭력에서 안전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봤다.
임준태 동국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가정폭력은 음주한 남성에 의해 주로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실제 폭력이 줄었다면 회식 등 술자리가 줄어 가정폭력도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고 건수 감소가 오히려 위험신호일 수도 있다"고 분석한 전문가도 있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피해자가 신고를 못 한다"며 "피해자가 오히려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신고 건수가 감소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가정폭력 상담 건수 등 다른 통계도 함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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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도 "폭력이 있어도 신고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고 접수 시 가해자를 바로 체포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신고에 엄중하지 못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가정폭력은 3년 동안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였다"며 "코로나19 유행이 가정폭력을 감소시켰다는 섣부른 결론을 경계해야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죄를 예방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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