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웅" "오해 송구"…의료진 언급 부쩍 늘린 보건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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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PAPR(전동식 공기 정화 호흡기)를 착용하고 격리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PAPR(전동식 공기 정화 호흡기)를 착용하고 격리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오해나 어려움에 대해 송구…".(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방역당국이 연이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현장 의료진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전에도 정례브리핑을 통해 의료진에 대한 사의(謝意)를 표했지만, 이번주 들어 의료진에게 유독 긴 시간을 할애했다. 최근 불거진 대구 감염 의료진 '신천지' 집계 문제 등 의료진 관련 논란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에서] #정부 브리핑서 연이틀 의료진 찬사 보내 #'신천지' 의료인 감염 논란 등 감안한 듯 #현장 의료진 "힘 낼 수 있도록 해주길…"

정은경 본부장은 1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의료진들의 노고와 헌신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의료진 건강 보호와 지원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며 "전국의 많은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노고로 대규모 집단발병을 통제하고 의료체계의 혼란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현황 등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현황 등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본부장은 확진자가 집중된 대구·경북 지역의 의료진에겐 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엔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의료 지원을 위해 참여해준 많은 의료인들이 있었다"며 "대구·경북 의료인들도 대규모 유행 차단과 환자들의 적절한 치료를 위해 혼신의 힘을 모아 코로나19 대응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도 이런 의료인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내주길 당부드린다"고 마무리했다.

전날 브리핑에 나선 권준욱 부본부장은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과 유감을 동시에 언급했다. 그는 "방역 과정에 (나선) 보건의료인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고 또 깊이 감사드린다"며 "특히 코로나19 감염병 재난현장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진단 검사와 치료에 헌신하고, 대규모 감염 통제의 성과를 낸 대구·경북 의료진과 자발적 파견으로 도움을 준 모든 보건의료인들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권 부본부장은 "일부 외국에선 이러한 의료진에게 국민 박수 캠페인 (진행한다는) 보도도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브리핑 과정 중 대구 지역 의료진에 대한 감염 발생 통계 발표나 지난번 영남대병원 진단검사처럼 일부 오해가 생기거나 해당 기관에서 어려움이 발생한 데 대해서 담당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뉴시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뉴시스

이전 브리핑에선 의료진의 노고를 길게 언급한 적이 흔치 않았다. 대개는 "현장에서 노력하는 의료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정도였다. 따로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대본의 '입'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 이틀 연속 의료진에게 감사과 유감을 전한 것만으로 이전과 다른 기류가 느껴진다.

권준욱 부본부장이 직접 언급한 대구 의료진 확진자 통계 문제, 영남대병원 실험실 오염 논란과 함께 지난주 정부가 해명한 의료진 처우 논란 등이 줄지어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최근에 문제가 불거진 건 현장 의료진 중 발생한 확진자 문제였다. 권 부본부장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24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대구 지역) 의료인은 모두 121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34명(28.1%)이 신천지 교회 신도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권 본부장은 "신천지 신도라고 해서 반드시 (교회) 활동을 통해 전파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의료기관 또는 지역사회 안에서 노출될 수 있다"고 전제를 깔긴 했다.

사흘 뒤인 지난달 31일 대구시는 확진 의료진 중 신천지 신도가 36명이라고 정정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 감염 의료진 상당수가 마치 신천지 교인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경 본부장은 1일 브리핑에서 "(신천지 의료인의) 감염 경로는 예배 등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더 많은 상황이다. 진료 과정 중에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례는 일부 섞여 있다"고 했다.

방역당국과 지자체의 이러한 발언이 이어지며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현지 의료진의 고생이 '신천지 프레임'에 묻혔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구동산병원에서 자원 근무했던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현장 의료진의 여론이 많이 안 좋았다. 의료진 철수 이야기까지 나왔다"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진 대구·경북 지역 자원 근무에 나선 의료진 처우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당 등의 처우 변경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의료진의 자가 격리 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헌신과 노고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예우와 처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가격리 규정 적용, 지침 설명 부족 등에 대한 의료인의 문제 제기는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시계를 좀 더 되돌리면 영남대병원 검사 오류 논란도 현지 의료진에게는 상처로 남았다.

지난달 18일 숨진 17세 고교생이 코로나19 검사에서 미결정 반응이 나온 것과 관련해 방대본이 '실험실 오염'을 언급하자 병원 측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후 실험실의 ‘일시적 일부 오염’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현지 의료진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의사회는 지난달 21일 "현실을 무시한 채 한 대학병원만의 잘못으로 사태를 몰아갔다. 의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일어난 경솔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 교대를 준비하는 의료진이 보호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다. 뉴스1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 교대를 준비하는 의료진이 보호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은 꾸준한 지원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은 "영남대병원부터 누적된 현장 의료진의 불만이 신천지, 처우 관련 문제로 폭발했다. 정부가 의료진 헌신을 제대로 알아줬으면 한다"며 "말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지역 병원에서 근무중인 간호사는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건 결국 현장 의료진이다. 의료진 사기가 떨어지지 않고 자부심을 갖도록 힘을 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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