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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최저임금 동결되나···심의 착수, 고민 커진 노동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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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저임금 시급 8590원, 내년에는?

올해 최저임금 시급 8590원, 내년에는?

고용노동부가 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3월 31일까지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는 최저임금법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위는 조만간 위원회를 소집해 심의에 착수한다. 논의 시한은 7월 15일이다. 논의 결과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고용부 장관은 8월 5일까지 확정, 고시해야 한다.

[뉴스분석] 고용부, 내년 최저임금 심의 요청

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최대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최저임금 지급은 고사하고 문을 닫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 고위관계자가 "올해 최저임금은 의외로 큰 갈등 없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재갑 장관 "경제상황 반영토록 의견 낼 것"

이와 관련 정부가 최저임금위에 내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한 의견을 낼지도 관심이다. 최저임금위는 독립기구다.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 위원들이 이듬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따라서 정부가 의견을 내더라도 정부의 방침을 전달하기보다 경제 상황 등을 설명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여러 가지 경제 상황, 고용 상황을 보고 사회적 수용도가 반영될 수 있도록 결정해달라고 최저임금위에 의견을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당시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코로나19 등에 의한 기업의 지불여력 감소와 경제상황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여파로 폐업한 매장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경기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웠던 소상공인들이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다. 줄폐업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스1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여파로 폐업한 매장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경기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웠던 소상공인들이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다. 줄폐업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스1

과속논란에 올해 최저임금, 역대 세 번째 낮은 인상률로 묶어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30%나 오르며 과속논란을 일으켰다. 노동시장이 요동쳤다. 결국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정부가 사용자 대신 임금을 지급하는 시장 교란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마저도 안 통하자 정부는 지난해 정공법을 택했다.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해 최저임금을 보정해줌으로써 실질적인 시급 1만원을 보장하는 형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2.9% 인상한 시급 8590원으로 묶었다. 인상률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로 낮다.

경영계 "최소 동결" vs 노동계 인상 요구안 놓고 고민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되면 이른 시일 안에 요구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최소 동결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 위기에 직면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속히 결론을 내고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을 깎는 것은 제도의 영속성 등을 고려할 때 어려울 것"이라며 "동결로 의견을 모으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뒤 최저임금을 인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동결한 적도 없다. 내년 최저임금이 동결되면 제도 시행 34년 만에 첫 제자리 걸음인 셈이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폐업한 의류매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폐업한 의류매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노동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국가적 위기에 비견되는 어려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 된다"는 기류도 있다. 이런 조직 논리가 작동하면 시급 1만원(16.4%, 1410원 인상)에 맞춘 인상안을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명분을 챙기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고 큰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따라서 최초 요구안은 인상 쪽으로 가닥을 잡더라도 심의를 진행하면서 낮추는 조율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마이너스 인상률을 막는 것도 버거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참에 통 큰 결단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코로나 이후 첫 노사협상, 희망주는 노사 리더십 보여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해서 적용하는 방안은 올해 심의에서도 논란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영세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강하게 요구할 움직임이다. 그러나 쟁점으로 부상은 하겠지만 예년과 같은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치닫지는 않을 전망이다. 노사 양측이 충돌하며 시간을 끌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최저임금은 코로나 사태 이후 노사가 현안을 놓고 처음으로 논의하는 자리"라며 "국가적으로 어려운 여러 상황을 고려해 갈등도, 후유증도 없는 심의·의결을 진행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노사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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