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환영의 빅피처] 이번 총선에서 ‘신채호의 꿈’ 생각하자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79호 35면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50~60대 이상의 우리 독자들은 교과서에서 우리말이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우랄알타이어어족 자체가 1960년대 언어학 이론의 세계에서 폐기의 길을 걸었다. 현재 한국어는 형제가 없는 외톨이 언어, 고립어다.

역사의 만약 묻는 ‘반사실 역사학’ #1990년대 이후 각광 받고 있어 #‘역사학적 상상력’으로 본 이번 총선 #전혀 다른 선택 기준 떠오를 수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학교를 다닌 분들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멀리는 18세기부터 가깝게는 1990년대부터 역사학계 일각에서 ‘반사실 역사학(counterfactual history)’이 각광받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하다는 흐름이다. ‘반사실 역사학’은 ‘왓이프(what-if)’, 즉 ‘만약에 과거에 이러저러했더라면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를 묻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역사 서술 방식이자 방법론이다.

미국과 유럽 사학계나 문학계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왓이프’ 메뉴로는 다음 같은 것들이 있다. 만약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쪽이 이겼다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1863~1914)이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지 않았다면? 만약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만약 미소 냉전에서 소련이 이겼다면?

한국사와 대한민국사를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만약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만적의 난’이 성공했다면? ‘묘청의 난’이 성공했다면? 5·16쿠데타의 명분을 당시 민주당 정권이 제공하지 않았다면? 5·16쿠데타를 미국이 용인하지 않았다면? 서울의 봄(1979~1980)과 1987년 독재타도·민주화 정국에서 YS와 DJ가 분열하지 않았다면? 만약 지금 통합당 세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했다면? 이번 총선 정국에서 정의당이나 통합당이나 민주당이 국민·유권자를 불편하고 난감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아직 ‘왓이프 사학’은 비주류다. 역사학의 주변부 가장자리에서 생존할 뿐이다. ‘난센스다’ ‘시간 낭비다’라는 비판도 있다. 역사학에서 이미 옛날에 용도 폐기 처분한 영웅사관(great man theory) 냄새가 짙다는 의견도 있다.

빅피처 3/28

빅피처 3/28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반사실 역사학’에는 이미 검증된 장점과 잠재된 장점이 많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반사실 역사학’ 캠프에 속속 가담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시니어펠로(senior fellow)가 있다. 하버드대 교수를 거친 그의 저작 중 『금융의 지배』를 비롯해 저서 13권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퍼거슨은 이렇게 주장한다.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전 유럽을 석권했을 것이며 종국에는 유럽연합(EU)와 비슷한 형태로 유럽을 재조직했을 것이다. 대영제국이 100년은 더 갔을 것이다. 한편 하버드대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석좌교수는 “역사적인 설명은 항상 반사실적 역사와 연관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 헨리 해즐릿(1894~1993)은 경제학을 ‘나쁜’ 경제학과 ‘좋은’ 경제학으로 구분했다. 해즐릿에 따르면 ‘나쁜’ 경제학은 소수 집단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모든 집단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한다. 해즐릿의 경제학 구분법을 역사학에 도립한다면, ‘반사실 역사학’ 또한 ‘나쁜’ 반사실 역사학과 ‘좋은’ 반사실 역사학이 있을 뿐이다. ‘좋은’ 반사실 역사학은 최대한 많은 정치·사회·경제 집단의 이익에 봉사할 것이다.

‘반사실 역사학’은 한때의 미풍(微風)같은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태풍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세계는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가 말한 ‘사회학적 상상력’ 못지 않게 우리는 ‘역사학적 상상력’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반사실 역사학’이 학술 세계에서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근거는 ‘반사실 역사학’이 본질적으로 ‘비교 사학(comparative history)’이기 때문이다. 사학에서는 정치학이나 사회학과는 달리 비교할 대상이 많지 않다. ‘반사실 역사학’은 비교할 대상을 아주 풍성하게 제공한다. 또 준엄하게 수백 년 전 가물가물한 이야기를 불편하게도 오늘의 문제, 오늘의 ‘나’의 문제로 끄집어 낸다.

‘반사실 역사학’은 고려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김부식의 선택과 묘청의 선택을 비교하게 만든다.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一千年來日大事件)이라고 개념 규정한 신채호(1880~1936) 선생의 분석과 분류에 따르면 묘청은 자주적인 역사관을 상징한다.

우리 여당과 야당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신채호 선생이 꿈꾼 자주적 역사관을 대표하는 것일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의 ‘왓이프’는 무엇일까. 이성계가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조선 국왕이 아니라 중국의 황제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중국 황제가 됐다면 우리 민족은 만주족처럼 중국에 동화됐을까.

‘왓이프’의 역사학은 ‘시나리오의 역사학’이다. 1994년 6월 제 1차 한반도 핵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가 평안북도 영변일대 북 핵시설을 정밀타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통일이 됐을까.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우리 모두 다 죽었을까.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은 ‘반사실 역사’다. 이번 총선을 ‘역사학적 상상력’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선택 기준 떠오를 수도 있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