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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 올림픽 연기, 그 뒤엔 중계권 돈줄 쥔 NBC 입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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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연기의 막전막후는 스포츠 외교의 대결장이었다.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연기의 막전막후는 스포츠 외교의 대결장이었다. [AP=연합뉴스]

2020년 도쿄올림픽 연기의 막전막후는 스포츠 외교의 치열한 대결장이었다. 더 나아가 스포츠와 경제가 뒤엉킨 한편의 국제 파워게임이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상 개최를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피할 수 없어 연기한다고 해도 연내 다시 여는 방안이 차선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운영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IOC는 일본이 가장 우려한 1년 정도 연기하는 시나리오를 꺼내 들었다.

일본 1년 연기시 7조 손해 #트럼프 발언으로 기류 변해 #NBC 영향력도 IOC 영향

이로써 일본은 큰 손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입장권 환불, 숙박 예약 취소 등 복잡한 문제를 맞닥뜨려야 한다. 1년간 경기장 및 선수촌 유지·관리비와 대회 재개최 경비 등을 더해 총 6408억 엔(약 7조2100억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은 미국과 파워게임에서 밀려서라고 해석한다. 당초 IOC도 일본과 같은 입장이었다. 코로나19 우려에도 정상 개최를 고수해왔다. 연기나 취소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1년 연기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2021년 6월), 세계수영선수권(2021년 7월), 세계육상선수권(2021년 8월) 등 다른 주요 국제 스포츠이벤트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불가 방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림픽 1년 연기를 언급하면서 정상 개최를 고수하던 IOC도 급선회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올림픽 1년 연기를 언급하면서 정상 개최를 고수하던 IOC도 급선회했다. [EPA=연합뉴스]

그러다 IOC가 최근 급선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올림픽 1년 연기'를 거론하면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일본이 예정대로 올림픽을 개최하기 바란다"고 했던 그는 이날은 "텅 빈 경기장에서 대회를 치르는 것보다 1년 연기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중 없는 올림픽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 강대국이자, 국제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IOC가 1년 정도 연기하기로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얼마 후 미국육상협회과 영국육상경기연맹을 필두로 한 전 세계 각국 올림픽위원회와 경기단체가 올림픽 강행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캐나다와 호주는 올해 예정대로 열린다면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IOC를 압박하기 시작했다면, 올림픽 TV 중계권사인 미국 NBC는 IOC가 '1년 연기 안'을 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NBC는 IOC의 최대 고객이다. 2011년 NBC는 2020년까지의 중계권료로 IOC에 43억8000만 달러(5조4500억원)를 지불했고, 2014년에는 77억5000만 달러(9조6500억원)를 추가해 2032년까지로 계약을 연장했다. IOC에 따르면 2013~16년 올림픽 관련 전체 수익이 57억 달러(7조1000억원)이었는데, 그중 73%를 중계권료로 벌어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IOC는 NBC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최근 NBC는 도쿄올림픽 광고의 90%를 판매해 12억5000만 달러(1조5600억원)라는 올림픽 광고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올림픽이 연기되는 것만으로도 NBC는 경제·경영적 측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개최 시기가 올가을이 될 경우 NBC 손해는 천문학적 액수가 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미국 프로농구(NBA),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등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프로스포츠가 시즌을 재개해 본격적으로 우승 경쟁을 펼칠 시기다. 올림픽이 열린다면 시청률이 분산돼 TV 광고단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IOC로서도 미국의 불참은 올림픽 흥행에 치명타다. 미국은 1996년 애틀랜타부터 2016년 리우까지 여섯 차례 여름올림픽에서 다섯 차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육상, 수영 등 주요 종목에서 수퍼스타를 보유했다. NBA 선수 주축인 미국 농구대표팀은 '드림팀'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린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개최국 대신 미국 손을 들어준 IOC를 원망할 여유가 없다.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내년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해 힘을 모으기도 바쁘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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