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가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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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원충 (Plasmodium falciparum)이 모기를 통해 사람의 혈액에 들어왔을 때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존 래드클리프 병원의 David J. Roberts 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7월 1일자 N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은 병원체에 대한 면역반응을 시작하도록 하는 dendritic cell (DC)을 마비시킴으로써 면역반응을 피한다고 보고하였다.

말라리아 원충은 다른 기생충들과 마찬가지로 숙주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라리아 원충은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변태기를 거침으로써 면역체계가 자신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면역체계의 공격을 피하는 교묘한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말라리아는 이런 방법들을 통해 세계적으로 수억에 달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그 가운데 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빠는 과정에서 종충 (sporozoite) 상태로 사람의 혈액에 들어오게 된다. 종충은 30분 이내에 간으로 이동하여 증식함으로써 일주일 후에는 수천의 종충이 간세포를 떠나 적혈구로 침입하게 된다. 일단 적혈구에 들어온 종충은 급격히 증식하여 때로는 다시 모기에 감염할 수 있는 생식모세포 (gametocyte)를 만들기도 한다. 마침내 적혈구가 파괴되면 말라리아 낭충 (merozoite)들은 혈액으로 빠져나와 즉시 다른 적혈구로 침입한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람은 열이 나기 시작하여 몸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병이 더욱 진행되면 빈혈과 신장병, 페수종, 뇌 말라리아로 발전하여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병원체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면역체계는 다양한 세포들을 가동시킨다. B 임파구와 T 임파구는 면역반응을 실행하는 세포들이고 DC는 면역반응의 지휘자에 해당된다. 전문적인 항원제시세포인 DC는 병원체를 분해하여 자신의 표면에 병원체의 작은 분자조작을 제시함으로써 T 임파구를 활성화시킨다. 이와 같이 활성화된 T 임파구들은 종류에 따라 직접 병원체를 죽이기도 하고 병원체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내는 B 임파구를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Roberts 박사의 연구팀은 말라리아는 이와 같이 면역체계의 활성화를 시작하고 지휘하는 DC를 무력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말라리아에 감염된 적혈구는 DC에 달라붙어 항원제시세포로 성숙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게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T 임파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DC의 수가 크게 줄어들게 되고 면역체계의 반응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적혈구는 DC에 달라붙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말라리아의 감염 메커니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백신개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원출처] http://helix.nature.com : 1999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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