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훈범 칼럼니스트의 눈

일회용 청년정치? 지방의회가 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년정치

서울 관악구의회 이경환(더불어민주당), 이기중(정의당), 주무열 구의원(더불어민주당, 왼쪽 부터)은 기초 단계부터 정치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만 권위주의의 구태를 벗어던지고 주민 생활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유럽 출장 중 현지에서 세 구의원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쳐]

서울 관악구의회 이경환(더불어민주당), 이기중(정의당), 주무열 구의원(더불어민주당, 왼쪽 부터)은 기초 단계부터 정치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만 권위주의의 구태를 벗어던지고 주민 생활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유럽 출장 중 현지에서 세 구의원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쳐]

4·15 총선을 위한 각 정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지만, 이번 역시 청년 후보들은 예의 구색 갖추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유권자들의 거센 물갈이 요구에, 정당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기식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한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당, 정치열정보다 인생극장 선호 #총선 청년후보 이벤트 소모품 전락 #권한 적은 지방의회가 오히려 기회 #기존 정치문법 무조건 거부는 손해

이벤트 차원에서 청년 후보를 내세우는 까닭에 정당들은 청년 후보들의 정치 열정이나 역량보다는 그들의 ‘인생극장’을 더 선호한다. 그들의 인생 스토리(굴곡이 심할수록 좋다)가 얼마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까 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청년당원들이 있는데도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직 상품성만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검증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사고가 나고 만다.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 2호였다 사퇴한 원종건(27), 미래통합당이 전략공천했다 하루도 못돼 철회한 김미균(34), 비례대표에 올인하는 정의당의 비례대표 1번 류호정(28)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설령 당선된다고 해도, 이들은 그저 정당의 거수기 역할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용도가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었던데다, 이들이 정치활동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기 내내 당 지도부의 행동대원 역할만 하다가 다음 총선 때는 용도 폐기당하거나 스스로 떠나게 된다. 막대한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회의원 경력이 결국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스펙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청년들의 정치 입문 통로로 국회보다 지방의회를 추천하는 이유다. 목표는 크게 세우되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기회로 삼으라는 얘기다. 25~39세의 청년 구의원이 4명으로 가장 많은 서울 관악구 의회에 그래서 더 관심이 간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관악구의회에 입성한 이경환(34·더불어민주당) 구의원은 “9급 공무원처럼 시험으로 뽑아도 되겠다 싶을 만큼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야 하는 곳이 바로 지방의회”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행정부를 감시하는데 생각보다 살펴봐야 할 게 많다. 주민센터를 신축해도 공사비 산정이 적절했는지 찾아내기 쉽지 않다. 그만큼 공부가 필요한데 지방의원은 1년에 회기가 100일도 안 되기 때문에 마음껏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다.”

기초의회의 권한이 크지 않기 때문에 청년들의 관심이 적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정치에 입문하는 데는 좋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방의원은 권한이 적은 만큼 큰 실수가 없다. 나는 때때로 국회의원이 아닌 게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500조에 달하는 국가 예산보다는 7800억원 구 예산을 감시하는 것부터 배우는 게 수월하지 않겠나 말이다.”(그는 지난해 말 구의회 예결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총선만큼은 아니겠지만, 청년이 기초의원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관악구의회 이기중(39·정의당) 구의원은 출마 세 번 만에 2018년 당선됐다.

“당시 새누리당 출신의 복수 후보가 나오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이다. 29세였던 2010년 처음 출마했는데, 중선서구에서 400표 차로 3등을 하는 바람에 떨어졌다. 그래도 진보신당 후보가 19% 득표를 한 것은 꽤 선전한 셈이었다. 두 번 떨어지긴 했어도 그 경력이 구의원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소수 정당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이것 역시 유권자들의 무관심 탓이다. 이경환 구의원 역시 정의당 출신이었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꿔 출마했다. 같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함께 당선된 주무열(35·더불어민주당) 구의원의 권유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주 구의원은 “이상도 좋지만 기존의 정치 문법을 악(惡)으로 몰아세우거나 무시하기만 하는 건 자신의 정치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기중 구의원 역시 “어찌 됐든 조직이 있어야 하고 그걸 통해 당선돼야 민주정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기초의원 활동에도 당적은 대단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기중 구의원은 “민주당의 두 동료 구의원이 부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두 구의원은 부서 공무원들에게 직접 정책을 제안해서 실현시키기도 하는데, 소수 정당 소속인 자신이 제안하면 아무래도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구청장이 같은 정당 소속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적은 달라도 청년 구의원들은 구의회에 활력소가 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관악구의회 왕정순 의장은 “심도 있는 토론문화가 생겼다. 청년 구의원들끼리도 의견이 달라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의견을 밝히고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청년정치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청년정치’ 하면 흔히 하는 오해가 두 가지다. 첫째는 청년정치를 꼭 젊은 사람이 하는 정치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꼭 물리적인 나이가 정신세계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젊은데도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회 소속으로 “어차피 대구·경북은 미래통합당 지역이니 ‘손절’해도 된다”는 낡은 정치공학적 사고체계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청년정치를 ‘구태와 기득권 관행에 덜 물든 정치’라고 정의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아무래도 젊은층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겠지만, 적어도 정치적 열정을 가지고 훈련이 된 사람이라는 필요조건이 있어야 한다. 주무열 구의원의 표현을 빌자면 “청년이 간택되는 정치가 아니라, 청년이 장악하는 정치”를 말한다. 청년을 총선 이벤트용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청년의 참신성으로 기성 정치의 때를 벗기는 것 말이다.

둘째는 청년 정치인은 청년 문제만 다뤄야 한다는 가정이다. 사실 청년뿐 아니라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들에게는 늘 자신의 영역만 대표하라고 강요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이라고 해서 청년 문제에 대표성을 갖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일반적인 문제에서 참신한 시각과 대안을 제시하는 게 청년정치의 핵심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기중 구의원은 고시촌이 밀집해 슬럼화돼있는 지역구를 캠퍼스타운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서울시에서 하는 창업이나 벤처 지원사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캠퍼스 부지 안에 모여있는 우리나라 대학과는 달리 마을과 대학이 섞여 있는 선진국들의 캠퍼스타운 말이다. 캠퍼스 밖에 있는 일반 상업 건물을 활용해 도서관이나 학생회관을 만들고, 대학 구내에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섞어놓을 이유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가는 우리의 사정을 감안하면 미래의 대학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이용만 잘되면 학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도시 슬럼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의원 한 명이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어떠한 창대한 결과도 시작은 언제나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청년정치의 힘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동취재=최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