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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병의 정신사회재활치료

중앙일보

입력

1. 서론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정신분열병이라는 병의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고 그 개념이 변화될 때마다 새로운 원인의 발견이나 좀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한 약물개발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 왔으나 그 결과는 항상 어긋났다. 그래서 정신분열병은 예후가 나쁘고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생각되었고, 한번 진단이 내려지면 이제는 환자의 적응능이 계속 떨어져 결과적으로 인격의 황폐화가 오는 것으로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환자들이 보이는 이상한 증상과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망상을 믿고 사는 환자들의 이질적인 정신세계가 주변사람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였고, 결국 가족들은 환자가 사회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정신분열병을 앓는 환자는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즉, 전에 믿고 있었던 정신분열병의 예후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만 한다. 또한 재활치료를 하면 정신분열병 환자들이 필연적으로 밟아야 하는 계속적인 적응능력의 저하를 방지하거나 감소시킨다는 증거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각 환자의 문제점에 맞게 개별적인 재활치료 방법이 개발되어 분화된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다. 무조건 모든 환자에게 획일적인 재활방법이 제시된다면 이는 별 의의가 없는 치료가 된다.

여기에 소개되는 재활치료는 최근에 정신의학에서 있었던 원인구명이나 병의 경과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종합한 것으로 과거에 쓰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들이다.

2. 정신분열병의 자연경과
과거에는 정신분열병은 일단 발생되면 병이 계속 악화되고, 증상이 일단 나아졌다가도 다시 재발하며, 결국 사회적응이 불가능하고 인격의 파괴가 온다는 비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과거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경과를 조사한 보고를 종합하면 전체 발병한 환자의 약 36.4%만이 병에서 회복되어 어느 정도의 사회적응이 가능하고, 나머지 환자는 인격파괴의 하향길을 걷게 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최근에 좀더 장기적으로 이 병의 경과를 조사해 보니까 이와같은 좋지 않은 예후로 판정되는데는 몇가지 치료방법이나 치료시설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현재, 정신의학계에서는 정신분열병의 증상들이 발병시와 발병 10년 후에는 그 형태에 변화가 온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약물치료를 받은데서 온 것이 아니고, 이 병 자체의 자연과정 때문이다. 즉, 환자가 병에 점차 적응되어 가면서 좀 더 편한 형태의 증상으로 진화되고 변화하여 증상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피해망상이 있는 환자가 이 망상 때문에 두려워하고 심하게 경계적이고 방어적인 적개심이나 공격성을 보이며 격하게 반항하던 초기증상에 비해서, 10년 후에 같은 환자가 보이는 피해망상은 그 내용에 있어 별로 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에 수반되는 격한 감정은 감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정신분열병 환자의 적응능력은 전적으로 정지되거나 계속 퇴행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발달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달과정이 있다는 사실은 병이 완치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증상이 계속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환자 본인이나 주변사람과 좀 더 편하게 관계를 재정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에 이같은 증상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인식못한 이유는 환자들은 치료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예후나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에 따라 환자들이 적응능력을 발휘하고 나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의 삶을 계속적인 발달이라는 안목으로 보지를 않아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환자가 좀 더 장기입원 체제에서 안전하게 수용되고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된다는 안이함 위주의 관리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또 일단 병이 생겨 처음 몇년 동안 겪은 치료적인 좌절에서 그 환자의 나머지 여생에 대한 예후를 결정해 버리고는 그 비관적인 판단을 재평가할 기회를 갖지 못해 새로운 치료를 계속할 여유나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환자들이 정신분열병이 발병한 후 10년, 15년, 20년 후에는 증상이 저절로 좀더 낳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즉 환자가 병이 있어도 계속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이 발달능력을재활의 원천으로 활용하고 결국 환자의 적응능력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근거가 제시된 것이다.

3. 정신분열병의 예후를 판가름하는 것은 재발의 빈도이다.
일단 정신분열병이 발병하면 환자에게 항정신병약물 치료를 해보는 것이 통상적인 치료과정이다. 약을 써서 증상이 호전되면 일단 퇴원시켜 외래에서 계속 약을 복용하는데 이 약의 계속적 사용은 재발의 방지가 큰 목적이다. 최근에는 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훨씬 더 과학적이 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약만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의 필요성과 약물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같이 하며, 약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치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재발을 예방하는 것은 약물의 복용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즉, 재활치료가 이 병의 재발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재활치료가 좀더 전문적으로 계획되어 시행되고, 특히 가족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협조할 때, 환자가 갖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극복될 수 있고, 따라서 재발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은 환자가 재활치료를 받는 도중에 보이는 저항이나 또는 일시적인 증상의 악화를 반드시 재발로 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발달과정에 동반되는 퇴행으로 보고, 위기처리를 하는 개입과정을 통해 일시적인 퇴행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재활치료는 위기처리를 할 수 있는 치료적인 보완이 되어 있어야 한다.

4. 정신분열병 환자의 위기관리
위기(Crisis)란 중요한 인생의 목표에 장애가 나타나고 그것이 일반적인 문제해결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유발된다. 정신분열병 환자에 있어 위기관리는 환자의 병이 일시적으로 나빠질 때 미리 그 재발 사인을 초기에 인식하여 더 큰 증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돕는 재활치료의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면, 병이 재발하기 전 대부분의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이유없이 잠을 못자고, 혼자 있으려고 하거나, 얼굴표정이 굳어지는 등의 초기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 환자나 보호자가 위기관리를 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일시적으로 약물을 증량시키거나, 치료자와의 면담을 강화하고, 스트레스의 요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입원치료까지 갈 필요없이 그 위기를 중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위기관리는 입원치료를 통한 의료비 부담을 감소시키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덜 고통스런 치료적 중재가 됨으로써 재활치료의 기본구성이 되는 것이다.

5. 재활치료의 정의
재활(再活)이란 그 단어가 지칭하는대로 `다시 살린다.´ 혹은 능동적으로 표현하면 `다시 산다.´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정신장애인의 재활치료란 정신병으로 인해 파괴된 한 개인의 기능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할 수 있도록 돕는 정신과적 치료과정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재활의 정신장애인들이 정상인과 더불어 지역사회 내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나 적응력을 길러주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6. 재활치료의 종류

(1) 치료적 공동체 (Therapeutic Milieu)
재활치료는 입원환자들이 있는 병동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병실환경의 구성이 재활치료의 우선이다. 재활치료를 수행하기 전에 환자들 스스로 병실의 일을 꾸려나가고, 서로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민주적인 병실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치료적 공동체의 구성은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환자를 둘러싼 환경들, 즉, 가족, 치료자, 학교, 직장 등으로도 그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병동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인간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때 재활치료는 성공할 수 있다.

(2) 정신과 낮병원 (Day Hospital)
낮병원은 입원치료와 외래치료의 장점을 살린 정신과 치료의 한 형태이다. 정신적 기능의 퇴행으로 개인의 일상생활 및 대인관계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들을 가정이나 사회로 원활히 복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단 환자들이 병원에서 퇴원하여도 곧바로 사회적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를 대상으로 일상생활의 기술 훈련, 대인관계 훈련, 자가 약물복용 훈련을 시키게 되면 환자들의 사회복귀는 빨라지게 된다. 낮시간 동안 환자들이 서로 모여 자기들의 문제들을 해결해보도록 노력하고, 저녁시간에는 가정으로 복귀하게 된다.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약물치료, 개인면담, 집단치료, 인간관계 훈련, 사회기술 훈련, 집단활동 등이 있으며,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정신건강교육, 가족지지 모임, 가족상담 등이 있다.

(3) 직업재활치료 (Vocational Rehabilitation)
협의의 정의로 직업재활은 핸디켑을 가진 정신장애인들에게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직업을 갖게 하여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정신과 치료를 말한다. 처음부터 지역사회내 사업체와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사회적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조건에는 직업재활을 통해 환자들의 기술이 향상될 수 있도록 치료적 프로그램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집단치료나 사회성 훈련이 포함된다. 또한 약물치료에 대한 교육, 보호자 교육 등도 이 프로그램과 함께 병행되어야 하며, 사업체의 정상 근로자들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4) 지역사회 적응 프로그램
병원 밖의 환경에서 환자들에게 적극적인 사회적응의 기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것도 역시 환자의 증상과 심리사회적 결함을 미리 측정한 후, 이 결함의 부분을 기법(Skill)으로 가르치며 직접 사회적응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행동치료의 원칙이 많이 응용되고 있다.

(5) 주간 재활센타
샘솟는 집이 전형적인 모델이다. 정신과 의사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는 환자 스스로의 자조모임을 말한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환자역할 (Patient Role)을 최소화시키는 것과 환자들이 자기들끼리 상조하는 상호지지 환경의 조성이다. 소위 ´Club-House´ 분위기에서 사교적 경험, 사회성 훈련과 재활이 경험으로 체득된다. 여기서는 좀더 특수한 문제해결 집단, 일상생활 보조집단, 직업재활 준비집단, 직업장 재활 등의 제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정신사회적 기능이 환자의 필요에 따라 보장된다.

(6) 거주시설 (Residential Service, Housing)
적절한 집문제의 해결 없이는 다른 재활치료의 효과를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거주지는 만성 정신질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거주지의 종류는 구조화된 정도와 감독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거주지에서 기거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곳에 있으면서 정신병원으로의 외래통원 치료나 낮병원 등에도 다닐 수 있고, 직업재활 프로그램과의 연결도 가능하다. 기거시설의 종류는 거주기간, 거주환자들에 대한 관리정도, 제공되는 서비스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영위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직업재활훈련을 받으며 비교적 장기간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장기 기거시설과, 퇴원 후 독립적인 생활의 전단계로 비교적 단기간 거주하는 시설 등의 종류가 필요하다. 가급적 20-30명 이내, 또는 10명 이내의 소규모로써 가족적인 분위기가 유지되고 가족적인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기거시설은 성격상 민간부문이 담당하는 것이 적합하다. 가능한 정부의 보조와 가족의 재정지원을 받지만 비영리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단체, 사회복지 법인체 및 일반적인 가정이 자원봉사 형태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7) 사회성 기술 훈련 (Social Skill Training)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자는 질병 자체의 합병증이나 병전성격 때문에 대인관계 형성이나 자기 주장을 잘 하지 못한다. 직업재활을 수행할 때도 사회성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데 구체적인 사례들을 중심으로 환자로 하여금 사회적 상황들에 적응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자기주장훈련 (Assertive Training), 대인관계훈련 (Interpersonal Skill Training), 일상생활기술훈련 (Daily Living Skill Training) 등이 포함된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여가활동, 오락, 교우관계, 약물의 자기관리, 이성관계, 태도교정 등을 가르친다. 이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연구발표는 잘 알려진 사실로 환자의 증상재발을 현저하게 억제해 줄 뿐만 아니라, 사회성의 현저한 호전으로 자신감의 회복, 실지 적응능력의 증가 등 환자의 삶의 질이 향상된 결과가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7. 결론
재활치료의 효과는 널리 확산되어 정신분열병 치료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병의 발생시부터 적극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재활치료는 이론보다는 실행의 문제이다. 올바른 지역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생각하는 공존의 철학이 숨쉬는 곳이다. 결코 경제적인 문제가 앞서야만 재활이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재활치료가 이 사회 내에서 정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신장애인을 최우선적으로 접하는 정신보건 전문가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나 의존적인 사랑보다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회의 철학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가지 중요한 동기에 의해 우리가 변화하듯이 정신장애를 앓았던 사람들도 올바른 정신보건의 중재에 따라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할 때 정신장애인의 재활치료는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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