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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품과 닮은 듯 다른 매력”…인기 시동 건 한국 소설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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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호 26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관도 못 가고 있다. 다니는 연구소도 3월 중순까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어 집에만 있다 보니 독서 시간이 엄청 늘어났다. 특히 한국 소설에 빠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일본 친구들한테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본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이 많아져서 일본 독자층이 늘어난 것이다. 한국 소설 코너를 따로 만드는 서점도 있다. 나는 평소에 한국 소설은 한국어로 읽지만 궁금해서 일본어판도 읽어 봤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번역본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몰입해서 읽었다.

세월호 이후 상실감 그린 소설 #김애란 『바깥은 여름』에 끄덕끄덕 #“한국 문학, 구미권 비해 거리감 적당” #후루카와 등 맛깔스런 번역 한몫 #쿠온은 20권 번역 출판, 북카페도

『바깥은 여름』은 단편 소설 일곱 작품으로 구성됐다. 공통된 주제는 상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배경에 있는 듯하다. 일본도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고 그 상실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윤동주 ‘서시’‘병원’ 읽고 한국 문학 관심  

1, 2, 3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한강의 『채식주의자』 일본어판 표지. [사진 나리카와 아야]

1, 2, 3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한강의 『채식주의자』 일본어판 표지. [사진 나리카와 아야]

되돌아보면 2013년 내가 처음으로 신문기자로서 한국에 출장 온 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한국에서 출판되던 때였다. 발매 전에 한국 출판사들의 판권 경쟁이 치열하고 엄청나게 비싼 금액으로 팔렸다는 뉴스를 봤었다. 한국에서 일본 소설 팬들, 출판사, 서점 등을 취재해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 취재를 하면서 문득 왜 한국 소설은 일본에서 안 팔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읽어 보면 재미있는 소설도 많은데 말이다. 아마 그 매력을 일본에 전달하는 사람이 모자랐던 것 같다. 그 당시 아직 한국어로 한국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일본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한국어학당을 다닌 2002년엔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사람은 극소수였다. 1년만 배워도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한 한류 붐 이후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다. 말을 배우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는 법. 그때부터 십수 년 지나고 이제 한국문학이 일본에서 자리 잡게 된 듯하다.

“일본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은 그 거리감이 적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문학은 뭔가 자신하고는 상관없는 느낌이지만, 한국 문학은 어딘가 일본하고 닮은 듯 조금 다른 게 흥미롭다는 것이다.

우수한 번역가의 존재도 크다. 문학을 잘 번역하려면 한국어 이해력은 물론, 일본어 표현력도 뛰어나야 한다. 『바깥은 여름』을 번역한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도 그중 한 사람이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나 윤태호의 만화 『미생』 등을 번역했다.

후루카와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인 1990년대였다. “대학에서 수업 시간에 읽은 한국 소설은 굵고 남성스러운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자기 취향하고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서시’나 ‘병원’을 읽고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역사적 배경도 같이 배우면서 인상에 남았다.”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회사를 8년 정도 다닌 다음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에 유학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과를 수료한 후에도 한국에 머물며 일했다. 그사이에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신인상을 수상하고 본격적으로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후루카와는 한국 문학의 매력에 대해 “그때그때 시대성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바깥은 여름』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세월호 사고 후 한국 사회와 개개인이 받은 상처를 담은 소설이다. “김애란 작가는 그것을 살며시 내밀어 주는 느낌,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풍기는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후루카와도 일본에서의 한국 문학 인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작년 『바깥은 여름』 출판에 맞춰서 김애란 작가가 일본에 와서 토크행사를 열었을 때도 만석이었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에 한국 소설 번역 기획서를 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출판물이 안 팔리는 시대에 그것도 해외 소설은 더더욱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출판사 쪽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온다.”

한국에서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은 일본의 몇몇 출판사가 한국 책 판권에 몰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영화 전문기자인 나한테도 한국 소설에 관한 강연이나 소설 후기를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고 있을 정도다.

후루카와는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문학 번역출판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쿠온(CUON)’은 꾸준히 출판해 온 레전드”라고 말한다. 레전드 ‘쿠온’ 김승복 대표는 나도 잘 안다. 2013년 도쿄국제도서전 때 처음 만났다. 이해 주제국이 한국이었다. 한강·김연수·김애란 등 한국 작가들도 많이 참여했다. 아직 한국 문학에 대해 잘 몰랐던 나를 가이드해 준 건 김 대표였다.

일본의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한국 문학을 일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의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한국 문학을 일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2007년에 설립된 ‘쿠온’은 한국 문학을 일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부터 김훈의 『흑산』까지 20권을 번역 출판했다. 김 대표는 “처음 전략은 일본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책을 고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 끝난 뒤인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감수성은 많이 가까워졌다고 봐요. 그래서 먼저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문학부터 소개하기 시작했죠.” ‘쿠온’은 일본의 다른 출판사에 한국 책을 소개하는 역할도 해 왔다. 일본 출판사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 한국 책을 일본어로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등 한국 출판사와 일본 출판사를 매개하는 에이전시 역할을 했다. “일본 서점에 한국 문학 코너가 생기는 것이 목표”라는 말을 2013년에 만났을 때부터 들었었는데 최근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을 보면 나까지 뿌듯하다.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뉴스는 한국에서도 보도됐다. 그런데 사실 그 외에도 여러 한국 책이 일본에서 잘 팔리고 있다. 김수현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완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에세이도 눈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동방신기 윤호가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 김 대표는 “계기는 K팝일 수도 있고, 한류 드라마일 수도 있고, 어쨌든 한국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반가운 일”이라고 한다.

‘쿠온’은 출판사나 헌책방이 많은 도쿄 진보초(神保町)에 ‘책거리(CHEK-CCORI)’라는 한국 북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쿠온에서 나온 책뿐만 아니라 한국 책이나 한국 관련 일본 책도 판다. 30명 정도 들어가는 공간을 이용해서 한국 문화 관련 행사도 활발히 열고 있다. 나도 그곳에서 한국 유학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후에는 ‘책거리’에 ‘축하한다’며 선물을 갖고 오는 일본 손님들이 잇따랐다고 한다. 그 정도로 책뿐만 아닌 한국 문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J팝부터 인기를 끌었다가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 소설이 인기를 얻을 때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여러 한국 문화에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은 걸렸지만 이제 그런 시기가 온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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