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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아직 젊은데 자주 깜빡깜빡? 심한 스트레스·우울증·술이 화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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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워킹맘 서모(41)씨는 요즘 건망증이 생겨 고민이다. 집에선 남편·부모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중요한 날짜를 자주 까먹거나 가스 불 끄는 것을 잊어 음식을 태우기 일쑤다. 직장에선 부서원 이름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고 하고 싶은 말·표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난감한 적이 꽤 있다. 서씨는 나이에 비해 유난히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 건강관리 소홀로 건망증이 왔다”고 했다.

건망증 극복하려면 #심각한 질환으로 생각하지 말고 #뇌에 적당한 휴식과 자극 주면 #기억력 저하 막아 증상 완화돼

 건망증을 호소하는 현대인이 의외로 많다. 뇌의 어떤 기능에 오류가 생긴 걸까. 기억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먼저 뇌는 특정한 정보나 사건을 기억 체계에 맞게 전환하는 부호화 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부호화된 정보가 오래 유지되도록 저장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다시 불러오는 인출 과정을 통해 정보나 사건을 기억한다. 건망증은 뇌가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능력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긴 경우다.

디지털기기 과사용도 주원인

건망증의 주된 원인은 노화다. 뇌는 30세를 넘으면서 조금씩 퇴행한다.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력 저하가 나타난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심하면 기억을 저장·인출하는 데 쏟을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다.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무기력감이 찾아오면서 기억력이 감퇴한다. 특히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사고의 흐름이 매우 느리고 단조로워진다.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나래 교수는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건망증을 호소하는 환자 상당수가 우울증”이라며 “정서적인 요인이 처리 속도를 늦춰 인지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술도 뇌세포와 상극이다. 과음·폭음 습관은 기억력 저하를 부추긴다.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지애 교수는 “술을 마시면 간 손상을 많이 걱정하지만 가장 먼저 타격받는 부위가 뇌”라며 “알코올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뇌와 신경계 필수영양소인 비타민B1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경고했다.

 20~30대에 나타난 건망증은 디지털 기기 과사용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뇌는 잘 쓰지 않는 부위의 신경 회로를 제거하는 특성이 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 약속 장소·시간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암기하기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저장하다 보니 전두엽의 사용 빈도가 감소한다. 그러면 전두엽의 신경 회로가 줄어 기억력이 떨어지기 쉽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치매다.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 의심한다. 건망증이 있다고 모두 치매는 아니다. 이럴 땐 건망증의 양상을 따져보자. 단순 건망증은 기억 기능에만 사소한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반면 치매는 기억력 저하와 함께 사고력·판단력에 문제가 생기고 이런 변화를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편이다. 홍 교수는 “치매 초기일 때 나타나는 기억력 저하는 새로운 것을 외우는 능력에 문제가 발생한다”며 “기억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히려 과거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건망증은 정보에 대한 힌트를 주고 몇 번 더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기억난다. 그러나 치매는 인지 기능 전체가 손상된 상태라 기억력 저하는 물론 판단력과 이해력, 작업 능력, 언어 구사력이 함께 떨어진다. 건망증은 가끔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치매는 엉뚱한 단어를 사용해 문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는 식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변화가 두드러진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건망증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건망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기억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비하하지 말고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유지한다. 건망증의 배후에 정서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게 급선무다. 우울증·불안증을 치료하면 건망증도 사라지는 사례가 많다.

산책·숙면으로 뇌 피로 해소

지나치게 뇌를 혹사한 사람은 가벼운 산책이나 숙면을 통해 뇌에 휴식을 줘야 한다. 반대로 너무 지적인 자극이 없어도 안 좋다. 독서·글쓰기와 같은 적당한 뇌 자극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고정된 위치에 두는 연습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홍 교수는 “혈압·당뇨·고지혈증이 있다면 치료를 받고 특히 걷기는 기억력 유지·향상에 도움되므로 실천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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