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식 압박'에 거부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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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자에서 8자로, 8자에서 다시 10자로'.

28일 아침까지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미.중국 등의 외무장관이 오후에 8자 회동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회동 몇 시간 전에 중국이 전격적으로 10자 회동을 제안했다. 미국은 마지못해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놓고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를 놓고 벌여온 신경전의 연장선에서 보는 것이다. 향후 중국의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중국의 '물타기'전략? =중국이 8자 회동에 합의했을 때 외교 전문가들은 다소 의아해 했다. 미국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모양새에 반대했던 중국이 미국의 우방인 캐나다와 호주까지 포함시킨 8자 회동에 동의하자 "중국이 북한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중국은 참가국을 10개국으로 늘렸다. 비교적 자신과 가까운 인도네시아와 미국과 종종 껄끄러운 관계를 보인 뉴질랜드를 포함한 것이다.

ARF 회의장에서 만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북.중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중국과 북한은 이웃 국가"라고 답했다. 대북 압박엔 동의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는 경계하는 태도였다.

◆ 대북 압박 가속 의지 보인 미국=10자 회동은 예정 시간보다 늦게 시작됐다. 리자오싱 외교부장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의를 주재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0여 분을 기다리다 중국 대표가 결석한 가운데 개회를 선언했다. 반드시 다자 회동을 성사시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되는 장면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리자오싱 부장은 "1시간30분 동안 백남순 북한 외무상에 6자 외무장관 회동 참석을 설득하느라 늦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 고립 자초한 북한=북한도 강경했다. 오전 회의 후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백 외무상에게 별도의 회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백 외무상은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고 딱 잘라 거절했다. 반 장관이 다시 말을 걸자 그는 "남북 관계는 6.15 남북 공동성명에 기초해 나가면 된다"며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회의장에서 백 외무상은 "우리의 주권적.합법적 조치에 대해 부당한 (의장) 성명을 강압적으로 통과할 경우 이를 전면 배격하며 (ARF에) 계속 남아 있을 지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한 모양새다. 칸타티 수파몽콘 태국 외무장관은 "회의에서 아소 다로 일본 외상과 함께 납북 외국인 문제를 제기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납북 여성이 한 명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태국 정부가 일본과 함께 북한에 '납북자' 문제를 공조했음을 시사했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이상언 기자

◆ 6자회담=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 5자회담=6자회담에서 북한 제외 / 8자 회동=5자회담+캐나다.호주.말레이시아 / 10자 회동=8자 회동+인도네시아.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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