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들고 가도 못 산다, 이미 예약 꽉찬 마스크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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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3일 경기도 안성산업단지 인근의 영세 마스크 제조업체인 C사 공장 마당엔 지게차 두대가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올려진 마스크 박스를 약 6개씩 싣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20만 장씩 생산하는 이 공장의 대표 김모씨는 마스크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주엔 마스크 60만 장을 만들어 온라인 판매업체에 공급했는데 반나절 만에 동났다”며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싶지만 어차피 원자재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구매업자들 “도매가 서너 배 뛰어” #중소공장, 중국산 원자재 동나 스톱 #물량 확보 대형업체 24시간 가동

이어 “우리 공장엔 원자재가 한 달 정도 분량밖에 확보된 게 없다”며 “그래선지 마스크를 구하려는 ‘다이궁’(代工·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이 우리 공장에 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형업체의 상황은 달랐다. 이날 오후 6시30분 인근 K업체를 찾았더니 마스크 제작이 한창이었다. 코스닥 상장사인 이 업체 관계자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며 “이미 확보해 둔 국산 원자재가 있고, 기존에 계약한 업체들 위주로 차질 없이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고엔 사람 키 5배 높이의 마스크 상자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영세업체와 대형업체 간 원자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고양 등 수도권 일대 마스크 공장 네 곳을 직접 방문한 결과다.

지난 2일 찾은 경기도 고양시의 Y마스크 제조공장은 이미 가동을 중단했다. 공장 문틈으로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대신 중년 여성의 목소리만 새어 나왔다. 멈춰선 기계 옆에서 배달음식을 먹던 업체 대표는 “중국에서 가져오던 원자재의 공급이 끊겨 오늘부터 공장도 멈췄다”고 말했다.

공장별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마스크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3일 오후 3시 안성시 인근 P사 공장. 잠시 후 ‘허’ 번호판을 단 빨간색 승용차가 공장 앞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남녀 3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차 트렁크에서 과일 선물세트 세 박스를 꺼내 들고 공장 안으로 향했다. 마스크 구매업자들이었다. 기자가 도착 후 20여 분 사이 두 팀(2명, 1명씩)이 더 공장을 찾았다. 모두 마스크를 못 산 채 빈손으로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이 업체 대표는 “이미 5월까지 공급 계약이 다 끝난 상태라서 찾아와도 마스크를 팔 수 없다”고 설명했다. 터벅터벅 발길을 돌리던 천선봉(41)씨는 “중국 우한에 당장 10만 장을 보내야 해 마스크 제조 공장 서너 곳을 돌았지만 한 장도 못 구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래 (마스크) 1장당 450원이었는데 지금은 도매 가격만 서너 배 뛰었다”면서 “이제 용인의 다른 공장에 가야겠다”고 차에 올랐다. 실제로 마스크 거래업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선 10만 장 이상 거래하는 도매도 장당 1400~2200원에 사겠다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일부 업자는 “영상통화로 물량까지 확인하고 돈을 보냈는데 마스크를 받지 못했다”며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보건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업체 대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들이 매일 업체들로부터 귀 끈, 필터 같은 원재료 물량, 전체 생산량까지 보고하라고 다그친다”며 “식약처 직원이 직접 나와 출고가와 판매가를 조사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부터 식약처·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에서 120명이 4인 1조로 30개 팀을 짜 90여 곳의 제조업체를 상대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 부당 폭리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김지아·최연수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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