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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링 하니스’가 뭐길래… 현대차그룹 약 6000억 손실날듯

중앙일보

입력

3만개의 부품을 적기 공급받아야 하는 완성차 생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렴한 부품을 확보하는 게 가격경쟁력의 관건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부품 공급을 다변화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변수를 맞아 한국 공장을 중단할 상황에 몰렸다. 사진은 미국 시카고 인근의 자동차 딜러 모습. [EPA=연합뉴스]

3만개의 부품을 적기 공급받아야 하는 완성차 생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렴한 부품을 확보하는 게 가격경쟁력의 관건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부품 공급을 다변화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변수를 맞아 한국 공장을 중단할 상황에 몰렸다. 사진은 미국 시카고 인근의 자동차 딜러 모습. [EPA=연합뉴스]

“중국 생산이 불가피한 품목인데 비난을 받아서 안타깝습니다.”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라는 자동차 부품 1개가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전 생산라인을 멈춰 세웠다.

소식이 전해진 뒤 와이어링 하니스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엔 ‘왜 중국에서만 생산하느냐’ ‘동남아로 생산을 다변화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불확실성이 높은 중국에 의존한 것이 화를 불러왔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업체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와이어링 하니스를 중국에서 생산 중인 A사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의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공급망)이나 해당 부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자동차의 전장부품이 늘어나면서 '신경망' 역할을 하는 와이어링 하니스는 더 복잡해지는 추세다.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캡처]

자동차의 전장부품이 늘어나면서 '신경망' 역할을 하는 와이어링 하니스는 더 복잡해지는 추세다.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캡처]

와이어링 하니스는 말 그대로 배선 뭉치를 연결해 등산∙군용조끼(harness) 모양으로 엮은 부품이다. 최근 자동차에 전장(電裝) 부품이 많아지면서 이를 작동하기 위한 전원을 공급하고 전기 신호를 각 제어장치나 연산장치에 전달한다. 쉽게 말해 ‘자동차의 신경망’인 셈이다. 등산·군용조끼에 각종 장비를 걸거나 매달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 부품을 연결하면 전원이 공급된다. 차체 조립 전에 미리 필요 위치에 깔아놓는다.

최근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기능을 위한 센서가 많아지면서 이 신경망 역시 과거 차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사람이 일일이 꼬아 묶고 연결해야 하는데 차량 별로 필요한 스펙이 달라 자동화하기 어려운 부품이다.

2000년 이전까지 델파이(미국)∙레오니(독일)∙야자키(일본) 등에 의존하던 와이어링 하니스는 현재 국산화가 이뤄져 있다. 현대차그룹은 유라코퍼레이션(45%)∙경신(40%)∙THN(15%) 등 한국업체에 나눠 공급받는데, 문제는 인건비다.

현대·기아차에 와이어링 하네스를 납품하는 경신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경신]

현대·기아차에 와이어링 하네스를 납품하는 경신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경신]

공정 자체가 수작업이 많다 보니 국내 인건비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수입해오던 와이어링 하니스를 2000년대 중반 이후 국산화에 성공한 생산 업체들은 세계 각지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다. 완성차 생산기지의 위치에 맞춰 한국은 중국에서, 미국은 멕시코에서 생산하고, 동남아에도 생산 시설을 만들었다.

다른 완성차 업체도 마찬가지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멕시코,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동유럽에서 부품을 공급받는다. 전 세계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도 지역별로 가까운 부품 공급망을 이용한다.

와이어링 하니스는 차량별 스펙이 다른 데다, 부피가 커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수급이 어려운 부품이 아니어서 재고 물량을 많이 두지 않는다. 적기공급(Just In Time)이 가능하도록 공급선을 다변화하면서 재고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글로벌 생산기지를 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한국 공장이 중국에서 부품을 공급받는 걸 불합리한 선택으로 보긴 어렵다. 시장에 맞춰 북미는 멕시코, 인도는 동남아에서 받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공장 일부 라인이 휴업에 들어간 4일 오후 울산 현대차 공장 주간 근무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퇴근하고 있다. 현대차 공장은 순차적으로 휴업에 들어가 7일 모든 생산을 중단한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공장 일부 라인이 휴업에 들어간 4일 오후 울산 현대차 공장 주간 근무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퇴근하고 있다. 현대차 공장은 순차적으로 휴업에 들어가 7일 모든 생산을 중단한다. [연합뉴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현대차그룹이 5일 동안 한국 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약 3만대 가량의 생산 차질을 빚는다. 돈으로 환산하면 6000억~7000억원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일단 10일 이후 중국의 휴업이 종료되는 게 최선이다. 국내 생산물량을 늘리고 동남아 공장 증산을 통해 와이어링 하니스를 공급받을 예정이지만, 물량도 가격도 맞추기 어려워서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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