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20% 깎아준다" 유럽車업계 할인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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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달 30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중심가 잘츠 우퍼 1번지. 거대한 유리로 뒤덮인 4층 높이의 메르세데스 벤츠 판매장은 층마다 신형 모델로 가득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페터 슈미트(42)는 "C클라스 2천㏄ 차량을 보러 왔다"며 "판매직원이 얼마나 할인해주는 지를 보고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15~20% 정도 할인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기대보다 할인폭이 작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새 차를 제값 다 주고 사는 사람은 바보거나 아주 부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판매직원은 "벤츠 같은 고급차 정규 매장에서 20% 정도 가격 할인을 놓고 고객과 흥정을 벌이는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일"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오후 베를린의 BMW 독점판매 업체인 에를의 매장. 신차와 중고차를 막론하고 일부 모델 외에는 10~20%까지 가격을 깎아준다는 광고판이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럽차 판매 시장에 할인 경쟁이 후끈 달아 올랐다. 경기 침체로 고객들의 구매심리가 움츠러 들었기 때문이다. 또 올들어 GM.포드 등 미국차 업체들이 저가 판매로 시장 공략에 나선 데다 2004년 초반까지 30여 종류에 달하는 신형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라 유럽차 업체들이 기존 모델 처분을 위해 대대적인 할인 세일에 나섰다.

독일자동차산업연맹(VDA)의 코트샬크 회장은 "고객이 황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할인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벤츠나 BMW.아우디 등 고급차는 공식적으로는 할인 판매를 부인하고 있지만 현금거래를 조건으로 평균 15% 할인해 주면서 호텔 숙박.식음료권.주유상품권 등을 주고 있다.

르노와 시트로앵은 라구나.세닉 등 신형 모델 구입시 중고차 가격을 최고 3천5백유로(약 4백70만원)만큼 높게 보상하고 있다. 시트로앵은 C5 콤비와 C8 밴 등 일부 신형 모델에 대해선 중고차 가격을 최고 5천유로까지 보상해주고 있다.

'제살 깎아먹기'라는 무이자 할부판매도 등장했다. 르노와 피아트는 경쟁사의 모델을 타다가 자사 차량으로 대체 구입하거나 신형 모델 구입 때 24개월 무이자 할부판매를 내걸고 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후베르트 이사는 "미국업체는 신차 판매시 대당 평균 4천달러(약 4백80만원)를 서비스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며 "독일에서도 부가세(차값의 16%)를 감면해 준다거나 1천ℓ주유권을 제공하는 등의 판매경쟁이 가열된다면 미국과 같은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에서도 이미 자동차 한대를 판매하기 위한 서비스 비용이 평균 2천유로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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