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새마을정신 심어주고 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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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원봉사자 이홍씨가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한국 새마을운동의 성공 비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 나이에 몇달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가난한 나라 대학생들이 한국의 성공담을 듣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하니 더 바랄 나위가 없죠."

지난해 정년퇴직한 60대 자원봉사자가 지난 한 학기 동안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새마을정신'을 심어주고 최근 돌아왔다. 그의 '새마을 운동' 강의는 그 대학 재적학생의 10%가 경청했을 만큼 현지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은 예비역 중령으로 한국과학기술원(KIST) 한국기술벤처재단 본부장을 지낸 이홍(62)씨.

군인과 연구원으로만 평생 살아온 이씨는 올해 초 세계청년봉사단(KOPION) 1기 시니어 봉사단원에 지원했다. 친구들이 퇴직 후 골프, 여행, 술모임 등으로 소일하는 것을 마땅찮게 봐온 이씨는 '건강할 때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KOPION과 결연을 맺은 캄보디아 국립 마하리시 베딕 대학(MVU)은 당초 그의 경력을 감안해 영어나 마케팅을 강의해달라고 주문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할 수 없는 강의를 해보고 싶었단다. 며칠 간 숙고 끝에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1960년대 중반에는 한국이나 캄보디아의 국민소득은 100달러 수준으로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은 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고 있고 캄보디아는 300달러로 여전히 60년대 한국 수준입니다. 이런 엄청난 차이를 낳은 배경에 새마을운동이 있었다고 판단했죠."

사실 그는 새마을운동과 특별한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3월 출국을 앞두고 40여일간 새마을운동본부와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밤늦게까지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져 영어 강의록을 만들었다.

수도 프놈펜에서 울통불퉁 비포장길을 7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MVU는 국립대학이었지만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재적 학생은 900여 명.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지키지 않기 일쑤였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려 교내 위생상태도 엉망이었다.

이씨가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지각하는 학생은 수업에 못 들어오게 하고 학생들을 동원해 교내 대청소를 벌였다.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있으면 안 될 일이 없다며 새마을운동의 구체적 성공 사례를 들려주고 학생들을 독려했다.

그의 열정은 점차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강좌는 경영학부에 이어 농학부에도 개설됐다. 90여 명이 정식으로 수강을 했고, 수십명이 청강할 정도로 인기였다. 종강 무렵에는 학생들 스스로 '우리 마을 개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습하고 평가했다.

6월 중순 종강 직후 학생들은 편지를 이씨에게 전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새마을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입니다. 우리도 노력해서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를 꾸미고 싶어요."

이씨는 "앞으로 3~4년 동안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새마을운동을 가르치고 싶어요. 은퇴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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