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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의 퍼스펙티브

장기집권 구상 터무니없어…상대 인정하는 체제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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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선거법 개정과 헌법 

퍼스펙티브 1/23

퍼스펙티브 1/23

20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라고 한다. 과거에도 이런 말은 수없이 들었다. 국회를 볼 때마다 지금보다 더 나쁠 수 있겠느냐 싶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모범적인 국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현재 상황과 대비돼 좋아 보이는 측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13대 국회를 많이 꼽는다.

경쟁 정당을 타도 대상으로 생각 #민주주의 하려면 상대 인정해야 #선거 민심은 항상 현명하고 엄중 #국회 바꾸려면 권력구조 바꿔야

1988년. 6월 항쟁이 있었던 바로 다음 해 개원한 국회다. 그때 우리는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처음 경험했다. 여소야대 4당 체제였지만 정치력을 어느 때보다 잘 발휘했다. 전임 대통령을 국회 청문회에 소환하고, 백담사로 ‘유배’ 보냈지만 모두 정치적 합의로 처리했다.

5공화국 권력형 비리를 청산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을 가리는 청문회를 열었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방자치법을 처음 만들었다. 법안을 가장 많이, 대부분 협상을 통해 합의 처리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로 정당에 배분하고, 합의의 전통을 만든 것도 그때다.

21대 국회는 달라질까?

6·13 지방선거 광역 정당 투표로 비교한 선거법 개정에 따른 정당별 손익

6·13 지방선거 광역 정당 투표로 비교한 선거법 개정에 따른 정당별 손익

20대 국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선거법 개정은 국회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온 전문가들은 개정 선거법을 ‘준 연동형’, 혹은 ‘준준 연동형’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게 아니라는 평가절하다. 연동형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연동형은 정당 지지율대로 의석을 가져간다. 준 연동형, 준준 연동형으로 변형했지만, 그 틀을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절반을 넘지 못한다는 건 연정(聯政)이나 협치(協治)가 일상화된다는 의미다. 단정하기 어렵지만, 연동형이 앞으로 더 강화되고, 협력 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이다.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뒤집어 말하면 한 표라도 적게 받은 후보가 떨어진다. 당선자보다 한 표가 적으나, 겨우 한 표밖에 못 얻으나 낙선인 건 마찬가지다. 소수 의견은 묻혀버린다. 거대 양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큰 정당의 공천이 바로 당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소선거구제라도 13대 국회는 4당 체제였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결과다. 지역마다 제1당과 제2당이 달랐을 뿐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떨어지는 후보에게 표를 주기 어렵다. 자기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후보라도 군소정당인 경우 투표를 주저하게 된다. 자기 표가 사표(死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가장 싫어하는 후보에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안겨줄 수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후보보다 덜 싫은 후보를 고르는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된다. 국회의원 선택권을 정당 지도부가 쥐게 된다.

소수 정파의 목소리가 조금 더 반영될 것은 분명하다. 물론 3% ‘문턱’(봉쇄조항)을 넘기는 쉽지 않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유효투표수의 3%를 얻거나, 지역구 5석 이상을 얻어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선거법 189조) 지난주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3%를 넘은 정당이 민주당·한국당·새로운보수당·정의당·바른미래당, 5개 정당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3% 문턱에 한참 못 미친다. (아래 그래프 참조)

정당 지지도

정당 지지도

선거 예측은 다 빗나갔다

정치부 기자로 35년 넘게 지켜봤지만, 선거 때마다 ‘이변’(異變)이다. 말이 좋아 이변이지 예측이 틀렸다는 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언론이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론만 그런가. 정치권도 잘못 짚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소선거구제를 처음 도입한 1988년 13대 총선. 집권당인 민정당 지도부는 선거 직전까지 “너무 많은 의석을 차지할까 걱정”이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야권은 3김으로 분열돼 있고, 소선거구제이니 민정당 후보가 싹쓸이할 거라고 믿었다. 당시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예측도 그랬다. 그렇지만 결과는 최초의 여소야대였다.

그 직전인 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 측 일부 참모들이 ‘4자 필승론’을 주장한 것도 같은 논리다. 노태우·김영삼 후보가 경상도 표를 나눠 먹으면, 호남표를 모아 김대중 후보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한 배경이다. 비슷한 구도에서 한쪽은 여-야, 한쪽은 경상-전라로 나누어 ‘희망적 전망’을 한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살펴보면 민심은 항상 현명하고, 엄중했다. 자만해서 이긴 선거가 드물다. 92년 14대 총선에선 3당 합당한 민자당이  일본 자민당처럼 천 년, 만 년 집권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반수도 놓쳤다. 17대 총선에선 ‘탄돌이’의 돌풍과 김종필 총재의 몰락을 확인했고, 18대 총선에선 선진당, 친박연대 등으로 쪼개지고도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장기집권의 꿈에서 깨라

예측이 크게 빗나가는 것은 보고 싶은대로 보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도 그런 왜곡된 전망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연동형으로 가면 큰 정당들이 손해 보는 건 사실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큰 정당들이 지지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하면서 20대 총선 상황에 많이 대입한다. 그런데 정치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금 판세와는 아주 다르지만 6·13 지방선거를 한번 보자.(표 참조)

광역단체 비례의원 투표에서 민주당이 전국 평균 51.4%를 얻었다. 한국당은 27.9%다. (지난주 리얼미터의 정당지지도 조사는 민주당 38.4%, 한국당 32.7%) 그런데 253개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따지면 민주당이 219곳을 이겼다. 국회의원 선거라면 지역구 의석 219석을 차지했다는 뜻이다.

개정 이전 선거법으로 비례의석을 배분하면 총의석이 민주당 244석 대 한국당 48석이 된다. 개정선거법대로라면 228 대 54로 차이가 줄어든다. 민주당은 16석을 손해 보고, 한국당은 6석을 더 얻는다. 물론 선거 때마다 득실이 달라진다. 과거 선거를 보면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변하지 않는 건 연동형에서 의석 출렁임이 좀 더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비례의석 비율을 늘리고, 완전연동제로 하면 지지율과 의석 비율이 더 가까워진다. 정치를 버리고, 전쟁을 벌이는 국회를 진정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은 이길 때만 생각한다. 경쟁 정당을 타도 대상으로 생각한다. 대화와 타협의 상생 정치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5년 단임 대통령인데도 정권을 넘겨줬을 때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천 년, 만 년 집권할 것처럼 움직인다.

상대 인정해야 국회 바뀐다

국회법 개정에 공수처법을 갖다 붙인 건 뚱딴지같다. 2018년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선거법 개정 이후 곧바로 헌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 6항에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고 붙여놨다. 헌법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거법 개정을 반대한 의원도 많았다. 그런 논리라면 선거법을 바꿨으니 이제 헌법 차례다.

중요한 것은 상생이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자기만 옳다고 외치는 사람은 좌파건 우파건 전체주의로 빠지는 걸 역사에서 경험했다.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를 반복하는 것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불통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은 소통과 다양성을 요구했다. 정적을 몰아내고 또 다른 제왕적 불통 대통령을 만들려는 건 아니다. 촛불을 살리고, 국회를 바꾸는 길도 개헌으로 이어진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