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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들의 오만|김상철<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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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책임제국가인 우리나라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사실 하나의 독특한 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특정사안에 대한 조사권이 아니라 국정전반에 대한 정기적 일반감사권을 의회에 부여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자칫 의회가 국가의 최고통제기관처럼 되어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원리가 깨져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공화국 헌법이 부활시킨 국정감사권에 대해 한결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갖는 국정의 견제·감시기능을 수행하는 데 효율이 크기 때문이라는데 있다. 이는 행정기능이 날로 비대해지고 있는 추세에서 관료적 병폐의 방지를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과거 정부권력의 횡포와 독주에 대한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회가 삼부 중 최고의 권부가 된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는 견제와 감시의 권한이지 통제와 감독의 권한은 아니다. 하물며 국민의 공복인 국회의원이 국민전체의 대표임을 자임하여 다른 모든 국가기관 위에 군림하는데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되겠다.
많은 관심과 화제 속에 두 번째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과로로 순직한 공무원도 있고 전국가기관이 일시에 북새통을 겪는 홍역을 치르기는 했으나 모든 국가정책이 비판논리의 시험대를 거쳐야 했던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 자료준비의 소홀이 문제된 바 있으나 숨기고 싶었을 비리와 난맥상이 꽤 드러났다. 이것은 분명 성과다.
한편 정략이나 당파적 이익, 심지어는 자기선전에 집착하는 모습들은 우리를 우울하게 했고, 추궁이 지나쳐 매도로 흐르거나 무책임한 폭로발언은 그저 탄식만을 나오게 했다.
전문성이나 품위의 부족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더라도 진지성과 성실성마저 의심스러워 그 광경이 보기 딱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금배지」의 오만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수감기관의 권한남용을 추궁함에 있어서는 자못 의욕적이고 집요하나 스스로의 권한행사에 있어서는 흔히 무분별·무절제하며 곧잘 정치성궤변을 들이대 법의 정신을 외면하려 들었다.
아마 본인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자부심과 대접을 받는 기분에 취해 못 깨달은 듯하나 일반사람의 눈에는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민심이 한번 『해도 정말 너무 한다』하고 돌면 아무리 선량의 위세인들 추풍 낙엽처럼 되는 것이다.
그간 거의 모든 상임위마다 국정감사를 시작함에 있어 수감기관의 장과 주요간부 및 모든 유관기관장들을「증인」으로 채택해 선서부터 시켰다.
이러한 증인선서는 수감기관간부들을 기 죽이는데 유효할지 모르나 법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수감기관으로 하여금 「보고」와 자료 제출을 하도록 하고 있지「증언」을 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증언의 청취는 주로 국정조사시에 필요한 것으로 증인이라 함은 감사기관이나 수감기관의 인물이 아닌 제3자일 때 비로소 그 적격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감기관의 간부들을 우선 일괄해 증인으로 채택, 선서부터 시키는 것은 심한 횡포다. 게다가 선서에 있어 피차 경건한 대도를 취해야 할 것인데 증인으로 수고해 주러 온 사람은 세워놓고 자기들은 앉아서 선서 받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증인을 무려 2천7백명 채택했다는데 그렇게 많이 불러 선서시켜놓고 실제로는 몇 사람이나 신문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년과 같은 과오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재무위의 한은 감사 때에는 8개 시중은행장들을 모두 증인으로 소환해 선서시키고는 정작 이렇다할 신문도 하지 아니하고 해외출장으로 불참한 사람의 성토에 시간을 보냈다하니 증인소환을 무슨 영접명령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인가.
국회의원들로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장관이하 기라성 같은 유관간부들로부터 선서 받는 기분이 좋을지 모르나 나라의 법도가 어처구니없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도 같이 들었어야 옳았 다.
한편 소관 상임위가 딱히 정해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는, 예컨대 서울특별시의 경우 20일의 감사기간 중 7개 상임위가 감사를 벌였고, 규모는 작으나 관광지인 제주도는 5개 상임위로부터 감사를 받았다고 한다.
각 상임위가 자기 중심에 빠지지 않고 분별력을 가져 상호조정의 노력을 했더라면 이러한 중복감사의 폐단이 상당히 줄어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노동위가 노동사건수사 문제를 따지겠다고 검찰총장을 증인으로 소환한 것은 권한 횡포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힐 것이다. 법률이 국정감사에 있어 계속중인 재판과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치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독립된 사법권과 준사법권의 성격을 가지는 검찰권의 행사에 정치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과는 달라 정무직이 아니며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제까지 도입했다. 그러므로 검찰총장은 국회법상의 소관상임위인 법사위에서 조차 구체적 사건의 수사와 소추에 관해 추궁 받지 않아야 한다. 국가형벌권행사의 엄정을 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법사위에서는 특정공안사건의 변호인인 국회의원이 그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을 추궁한 바 있고, 소관이 아닌 다른 상임위에서 특정 사건의 검찰권 행사라는 직무사항에 관해 증인소환이라는 변칙적 방법으로 감사를 해보려하고 있으니 이로써 법의 취지는 아예 몰각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노동위의 논리대로라면노동사건의 재판에 관해 법원행정처장은 물론 담당 법관이 증인으로 소환되는 것도 막을 수 없게될 것이다.「민주화」라는 말이 저마다 제멋대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민주화란 오히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5공청산」을 시대적 과제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모든 권력의 독선과 횡포를 청산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권력의 횡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무슨 「민주적」 권력기관이거나 민중적 집단의 횡포가 대신 들어서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권한 가진 사람들의 겸손과 절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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