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한의 반 태운 호주 '화염 토네이도'···강원 산불 때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호주 베언즈데일 지역에서 산불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AP=연합]

지난달 30일 호주 베언즈데일 지역에서 산불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AP=연합]

지난해 9월에 시작돼 해를 넘기면서까지 꺼질 줄 모르고 번지는 호주 산불.
벌써 남한 면적의 절반 가까운 4만9000여 ㎢가 불에 탔고, 사망자도 소방관을 비롯해 24명에 이르고 있다.
코알라·캥거루 등 야생 동물의 피해도 작지 않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호주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국내에서도 지난해 4월 강원도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로 인해 총 2872㏊(28.7㎢)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당시 648가구 149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재산 피해도 1291억원이 발생했다.

호주의 산불이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호주의 산불과 강원도 산불,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

뜨거운 불기둥 '화염 토네이도'

지난 2일 호주 빅토리아주 이스트 깁스랜드 지역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AP=연합]

지난 2일 호주 빅토리아주 이스트 깁스랜드 지역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AP=연합]

호주에서는 석 달이 넘도록 산불을 잡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일단 호주 자체가 세계적으로 인구 거주 지역 중에서 가장 건조한 곳인데, 여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여기에 시속 30~40㎞의 강풍이 불고,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까지 이어지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주에서는 산불 지역 곳곳에서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이른바 '화염 토네이도(firenado)' 현상까지 관찰되고 있다.
뜨거운 공기와 먼지, 잡동사니가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는 화염 토네이도는 '파이어 데블(fire devil)'로도 불린다. 말 그대로 화마(火魔)다.

화염 토네이도는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 그리고 불이 만나면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공기가 더워지면 상승한다. 공기가 더 건조해지고, 더 뜨거워지면 상승하면서 회전하게 된다.

일단 공기가 회전을 시작하면 바깥보다 안쪽이 더 빨리 회전하게 된다.
뜨거운 공기가 회전하고 상승하면, 주변의 공기가 중심으로 빨려들게 된다.
중심부 공기는 점점 더 빨리 회전하고 상승한다. 이때 주변에 산불이 발생했다면, 불꽃까지 빨아들이게 된다. 그게 바로 '화염 토네이도'다.

화염 토네이도는 산불이 발생할 때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2003년 호주 산불 때나 최근 캘리포니아 산불 때도 관찰됐다.
화산 분화구 주변이나 엄청난 규모로 폭탄을 퍼부었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

1㎞ 높이 진짜 토네이도보다 작아

토네이도 생성과정 [중앙포토]

토네이도 생성과정 [중앙포토]

최대 시속 200㎞(초속 55m)의 강풍을 동반하는 화염 토네이도는 10~20분 정도로 수명이 짧다
화염 토네이도 중심에서는 온도가 1000도 안팎까지 상승한다. 화염 토네이도의 높이는 보통 10~50m이지만 높이가 수백 m에 이를 때도 있다.

산불 토네이도는 하늘 위 구름으로 이어지는 진짜 토네이도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토이네도는 천둥·번개·폭우를 동반한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만들어진다.
거대한 뇌우 구름 속에 회전하는 공기 덩어리인 메조사이클론(meso-cyclone)이 존재할 경우 20% 정도가 토네이도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층의 강한 바람과 하층의 약한 바람이 만나면 두 바람 사이에서 공기 덩어리가 회전하게 된다.
두 손바닥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손바닥을 비빌 때 연필이 돌아가는 것처럼 수평으로 드러누운 메조사이클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메조사이클론은 어느 순간 수직으로 벌떡 일어서게 된다.
지표면이 차등 가열돼 더 많이 뜨거워진 쪽에서 상승기류가 생긴 탓이다.

그런 상태에서 메조사이클론의 아랫부분이 고속 하강기류의 영향으로 지표면까지 늘어지면 토네이도가 된다.
전체 높이 10㎞ 이상 되는 메조사이클론 중에서 통상 지표면에서 1㎞ 정도까지가 토네이도다.

화염 토네이도와 마른번개의 악순환

산불이 계속 번지고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상공에서 지난 4일 촬영된 산불 적란운(Pyrocumulonimbus cloud).[로이터=연합]

산불이 계속 번지고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상공에서 지난 4일 촬영된 산불 적란운(Pyrocumulonimbus cloud).[로이터=연합]

산불이 계속되면서 마른번개까지 잦아 산불이 추가 발생하고 있다.
뇌우를 동반하는 산불 적란운(pyrocumulonimbus)이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화재 폭풍(fire storm)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15㎞ 고도까지 솟은 산불 적란운에서는 번개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먼 곳에 새로 불을 놓는 역할을 한다.
높은 곳에서 사방으로 불꽃을 쏘는 셈이어서 산불이 갑자기 수~수십 ㎞ 떨어진 곳까지 점프하게 된다.

산불 적란운으로 마른번개가 떨어져 새로운 지점에서 산불이 시작되고, 산불은 화염 토네이도로 이어진다.
화염 토네이도로 인해 발생한 연기는 하늘로 치솟아 산불 적란운을 키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권춘근 박사는 "화염 토네이도와 산불 적란운이 서로 키워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호주 산불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짙은 연기로 인해 헬기 등 진화 인력과 장비가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산불이 이어지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편, 호주 기상청 등의 전문가들은 산불의 규모가 매년 커지고, 산불 시즌도 길어진 배경으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기후가 더욱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악화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는 것이다.

'도깨비불'도 화염 토네이도 탓

지난해 4월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산불이 확산, 주변 산림을 태우고 있다.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현상도 나타났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산불이 확산, 주변 산림을 태우고 있다.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현상도 나타났다. [연합뉴스]

과거 대형 산불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4월 강원도 산불이 커진 것은 강풍 탓이 컸다.
지난해 4월 4일 미시령에서는 '나무가 뽑힐 정도'인 최대순간풍속은 35.6m의 강풍이 불었다.
이른바 '양간지풍(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다.

국립기상연구소는 지난 2012년 2월 동해안의 대형 산불 피해는 양양~간성, 양양~강릉지역에서 부는 국지성 강풍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봄철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기압 배치에서 서풍 기류가 형성되고, 온난한 성질의 이동성 고기압이 중국에서 한반도로 이동하면 태백산맥 위 해발 1500m 상공에 기온 역전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기온 역전층이 형성되면 위로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는데, 이렇게 되면 찬 공기는 기온 역전층과 태백산맥 산등성이 사이의 좁은 틈새로 지나가야 한다.
이로 인해 찬 공기가 압축돼 공기 흐름이빨라지고, 산맥 경사면을 타고 영동지방으로 내려가면서 강한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강풍 속에서 산불이 나면 화염 토네이도까지 발생한다.
화염 토네이도가 발생하면 수관화(樹冠火)로 이어진다. 수관화는 나무의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 태우며 빠르게 지나가는 산불이다.

권춘근 박사는 "화염 토네이도가 발생하면 불이 붙은 작은 나뭇가지나 솔방울이 빨려 들어오고, 불씨는 바람에 날려 멀리 날아간다"며 "이를 비화(飛火) 또는 '도깨비불'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도깨비불은 불씨가 수백m를 날아가기도 한다. 2㎞를 건너뛰기도 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위성(아리랑 3호) 영상이 파악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 산림 피해지. [뉴스1]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위성(아리랑 3호) 영상이 파악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 산림 피해지. [뉴스1]

권 박사는 "산불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이 평소에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발생 원인을 미리 차단하고, 일단 산불이 발생하면 초동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