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개입' 징역 2년 박근혜, 구속 실패한 송병기 차이는

중앙일보

입력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다.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최초 제보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31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최초 제보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31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시자 박근혜, 제보자 송병기

 현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게 박근혜 청와대의 공천 개입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 최근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의 판결문은 지난 31일 송 부시장의 영장 심사에서도 등장했다. 두 사건은 청와대의 지시로 경찰이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는 점, 이를 입증할 ‘수첩’의 존재 등에서 비슷하단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현 단계에서 두 사건을 단순 비교해 구속을 판가름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 개입의 ‘출발점’이자 ‘정점’이었다. 그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정무수석실이 정보 경찰을 동원해 친박 후보 여론조사 등을 벌였던 건 “친박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명시적ㆍ묵시적으로 선거 개입을 지시ㆍ승인했다고 인정했다.

 [사진 JTBC]

[사진 JTBC]

“송병기는 관문, 청와대가 핵심”  

현 정권의 하명수사 의혹 역시 송병기 부시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송 부시장은 지난 2017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최초 제보한 인물이다. 청와대가 이를 경찰에 전달해 김 전 시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고, 김 전 시장은 결국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 자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송철호(더불어민주당) 현 울산 시장이 가져갔다.

하지만 송 부시장은 청와대 윗선으로 수사가 올라가기 위한 ‘관문’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단순히 제보를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구속하긴 어렵고 제보 이후 청와대와 어떻게 선거 개입을 공모하고 실행했는지를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한 줄기인 당내 경선 후보 매수 의혹도 송 부시장 영장엔 들어가 있지 않다.

송병기-청와대-경찰 공모 어디까지 밝혀내나

결국 하명 수사 의혹 핵심은 청와대와의 공모 여부다. 박근혜 청와대-경찰처럼 선거 개입을 위해 ‘한 몸’처럼 움직였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송 부시장의 구속 영장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이를 입증할 물증이 송 부시장의 업무 수첩이다. 수첩에는 송철호 시장 측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만난 정황, 그리고 김 전 시장의 핵심 공약인 산재모(母)병원이 무산된다는 정보를 청와대로부터 미리 듣고 공공병원 공약을 대신 준비한 정황 등이 빼곡히 적혔다.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 우상조 기자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 우상조 기자

법원은 이 부분은 수사가 아직 진행중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기현 전 시장 등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수첩 내용의 사실관계와 의미를 확인하고 있다. 청와대 측에선 백원우 전 비서관만 지난주 첫 조사를 받았다. 송철호 시장과 황운하 전 청장 등은 아직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공소시효 만료 주장도 엇갈려

법원은 영장 심사 때 논란이 된 ‘공소 시효’ 문제에 대한 판단도 미뤘다. 영장 기각 사유에는 “사건 당시 피의자의 공무원 신분 보유 여부 등을 고려하면”이란 문구가 포함됐다. 공직선거법 제268조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 6개월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지위를 이용하여 범한 선거 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늘어난다.

앞서 영장 심사에서 송 부시장 측은 사건 당시 민간인이었다며 공소시효 6개월을 주장한 반면, 검찰은 “공소시효가 10년인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와 송 부시장이 공범이므로 시효를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 부분도 송 부시장과 청와대의 공모 관계 입증 여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영장 기각 이후 진행되는 검찰 수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박근혜 정권 선거 개입 사건도 수사 초기 경찰 간부들에 대한 구속 영장이 기각됐었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송 부시장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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