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분양 동·호수가 다르다” 이게 조합계약 파기 사유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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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며 계약한 동ㆍ호수의 아파트 대신 다른 동ㆍ호수의 아파트를 받게 됐다면 조합계약 자체를 무를 수 있을까.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조합계약이 무효라며 소송을 낸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고 2일 밝혔다.

권씨 등 23명은 2015년 경기 화성의 A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사업 계획상 분양예정이던 아파트 중 106동과 107동의 각 호수를 분양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사업계획 수정으로 당초 계약한 동·호수 안지어

그런데 실제 아파트 건축 계획이 진행되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원래 조합은 1121세대 규모로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사업 부지 중 일부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1014세대를 신축하는 것으로 2016년 계획이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106동과 107동을 아예 짓지 않게 됐다. 권씨 등은 조합가입계획을 해제하고 이미 조합에 낸 계약금과 업무추진비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조합측은 조합에 가입한다는 계약이 주된 계약이고, 동ㆍ호수는 사업 진행 편의상 임시로 정한 것이어서 사업 계획이 변경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합원들이 사업계획동의서를 쓸 때 ‘추후 사업계획내용이 변경되거나 조정될 수 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도 썼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층별로 다른 분양가…계획파기로 봐야

1ㆍ2심 법원은 조합이 권씨 등에게 계약금과 업무추진비를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합은 조합원을 모집할 때 단지 아파트 평수뿐만 아니라 아파트의 층에 따라서도 다른 분양가격으로 조합원을 모았다. 계약서에는 지정호수가 적혀있지만 사업 계획이 바뀌면 지정호수가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법원은 ”지정된 호수를 분양받는 것이 계약의 주된 내용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부 조합원들이 소송을 내게 된 것도 조합이 사업부지를 확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므로 책임소재도 조합측에 있다고 봤다. 법원은 조합원들이 청구한 금액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조합 진행 시 수많은 변수…파기사유는 아냐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지역주택조합의 사업 특성상 여러 변수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지역주택조합은 보통 조합 설립 전에 미리 조합원을 모집해 그 분담금으로 사업 용지를 사거나 사용 승낙을 얻는다.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사업 승인을 얻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짓는데, 사업 시행 과정에서 재정ㆍ토지매입작업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최초의 사업계획이 변경되는 일이 적지 않다.

대법원은 조합과 조합원들이 처음 계약을 맺을 때 쓴 각서의 내용에 주목했다. 각서에는 "후일 아파트 단지 배치 및 입주 시 면적과 대지 지분이 다소 차이가 있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업계획이 변경, 조정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각서에 담겼다.

대법원은 "당초 조합원의 권리나 의무가 변경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 변경이 예측 가능한 범위를 초과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조합원들이 원래 지정된 동ㆍ호수 대신 그와 비슷한 위치와 면적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합계약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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