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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제1노총 등극···당장 경사노위가 야단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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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7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치안센터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7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치안센터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이 지난해 제1노총에 등극했다. 민주노총 창립(1995년 11월) 이후 23년 만이고, 합법적인 노동단체로 인정(99년 11월)된 지 19년 만이다. 당시 조합원은 각각 41만명, 57만700명이었다. 지난해 민주노총 조합원은 고용노동부 공식집계 결과 96만8000명이다. 두 배로 성장했다.

1989년 통계 작성 이후 노조원 수, 증가폭 최대 

한국노총은 46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으로 출범한 이래 72년 만에 제1노총의 지위를 내려놨다. 조합원 수는 93만3000명. 민주노총과의 조합원 수 차이는 3만5000명이다. 대기업 몇 개를 합한 규모로 작지 않은 차이다. 전체 조합원의 41.5%가 민주노총 소속이고, 한국노총 소속은 40%다.

2018년 노조조직률 분석 결과

25일 고용부가 발표한 '2018년 노조조직률'에 따르면 전체 노조 조합원은 1년 새 24만3000명(11.6%) 늘었다. 조직률은 2017년 10.7%에서 11.8%로 1.1%포인트 증가했다. 조합원 수 증가 규모와 폭, 모두 관련 통계를 작성한 89년 이후 최대치다.

2018년 노조, 공공부문과 대기업 중심으로 약진 [고용노동부]

2018년 노조, 공공부문과 대기업 중심으로 약진 [고용노동부]

공공부문이 끌고, 건설이 뒤에서 밀며 증가세 주도 

일등공신은 공공부문이다. 2017년 전체 조합원 중 63.2%이던 비중이 지난해 68.4%로 5.2%포인트나 올랐다. "전국공무원노조 합법화(2018년 3월)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이 많이 늘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전국공무원노조를 비롯해 정규직화한 비정규직 상당수가 민주노총 소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두 노총 간의 노노갈등이 극심한 건설 부문에서도 조합원이 제법 늘어난 것으로 고용부 관계자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결국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정부 정책이 정책의 대화 파트너인 한국노총을 밀어낸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매년 20만명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제1노총의 지위를 유지했다. 현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민주노총에 역전됐다.

고용부 극도 보안 유지…제1노총 교체에 따른 파장 만만찮아서 

고용부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알려젔다. 민주노총의 최대 노총 등극은 노사정 관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어서다.

노동조합원, 노동조합조직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노동조합원, 노동조합조직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1노총 빠진 경사노위 전락…대표성 논란일 수도

당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의 대표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그나마 경사노위가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노총이 제1노총으로서 든든한 사회적 대화의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한데 두 노총의 지위가 바뀌면서 제1노총 없는 경사노위가 됐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결국 경사노위의 위상만 덩달아 추락하는 부수적 역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외형상 제1노총이 빠진 모양새가 됐지만 상식적이라면 (민주노총이)사회적 대화체 복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직접적인 파장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를 제치고 별도의 노·정 대화체 결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 위원장은 "법적 기구인 경사노위를 제외하고 또 다른 협의체를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민주노총, 정부 위원회 근로자 위원과 공익위원 과반 확보로 입김 세질 듯

정부 정책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김도 커질 수 있다. 노동단체 간부가 근로자 위원으로 참여하는 정부 내 각종 위원회를 통해서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정부가 정책 협의를 위해 꾸려놓은 위원회에는 근로자 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노동계가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는 70여 개에 달한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위원회를 비롯해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정책 과정에 의견을 내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제1노총이 바뀌면서 근로자 위원 배분에 변화가 올 수 있다. 근로자 위원 수가 짝수인 곳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관계자가 동수로 참여하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근로자 위원이 9명인 최저임금위를 비롯해 홀수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선 민주노총의 입김이 강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한국노총 또는 한국노총이 추천하는 위원으로 과반이 채워졌다. 앞으로는 민주노총에 과반의 근로자 위원이 배분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노총이 강하게 요구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다.

상급단체별 조합원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상급단체별 조합원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 산하 공공기관 비상임 이사도 민주노총으로 교체? 

여기에 더해 노동계가 추천하는 공익위원 배분에도 민주노총의 의견이 우선 반영될 소지가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각종 정부 위원회의 공익위원도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인사로 채워진다. 그만큼 정부 정책에 대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커지게 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면밀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임원 구성에도 변화가 일 수 있다. 예컨대 근로복지공단이나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노동계의 추천을 받아 비상임이사를 선임한다. 지금까지는 한국노총이 추천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기존 비상임 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부터 민주노총이 추천권 행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책임 압박 강해질 듯…경제단체도 변화 불가피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된 이상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박도 강해질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이 제2단체일 때는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체에서 협상을 도맡으면서 노동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주노총이 그 역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회적 대화라는 것이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에 대해 이젠 한국노총에 떠넘길 게 아니라 민주노총도 고민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외면만 해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노사 대화의 당사자인 경제단체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같은 사용자단체도 민주노총을 최대 노총으로 맞이한 이상 회원사의 경제적 이익을 규합하고, 정책 중심의 전략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사용자 단체가 지금과 달리 제대로 기능하면 노동계도 정부나 정치권으로 달려가기보다 노사 양자 교섭을 우선하게 될 것이고, 이게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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