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이 만남 볼모로…佛 철도청, 크리스마스 어린이여행 서비스 중단했다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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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국영철도청 및 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이 18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0일 프랑스 파리의 가드리옹역이 통근을 하려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AP=연합뉴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국영철도청 및 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이 18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0일 프랑스 파리의 가드리옹역이 통근을 하려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AP=연합뉴스]

연금개혁에 반대하며 18일째 파업 중인 프랑스 국영철도청(SNCF)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여행 기차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가 부모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는 등 역풍을 맞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퇴임 후 수령할 월 2500만원의 연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며 파업 중단을 요청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승부수에 프랑스 총파업에 대한 여론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대안도 없이 서비스 중단" 비판 고조    

SNCF는 지난 20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주니어앤꼼파니(Junior&Cie)'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SNCF는 그동안 부모와 다른 지역에 사는 4~14세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연휴에 혼자 안전하게 기차를 타고 부모에게 갈 수 있도록 왕복 열차편과 안전 모니터 요원을 함께 제공해왔다.

원래 SNCF는 20일부터 24일까지 약 5000명의 아이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졌고, 이 서비스까지 중단키로 한 것이다. SNCF 측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부모들의 반발과 저항은 거셌다. 한 여성은 프랑스 '르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딸을 본 지 4개월이 지났다. 딸이 매우 낙담하고 있다"며 "비행기는 너무 비싸고, 버스는 아이가 혼자 이용하기엔 위험하다. SNCF는 다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분개했다.

21일 한 여행객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기차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 한 여행객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기차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SNCF는 22일 성명을 통해 "14개 열차를 운행해 어린이를 위한 5000개의 좌석을 제공하겠다"고 서비스 중단을 철회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키로 했던 루카스라는 이름의 11살 아이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열차가 끝내 취소됐다면 아빠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대해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이자 행위지만, 가족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월 2500만원 연금 포기 승부수

이날(22일)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 타개책으로 '대통령 특별연금' 포기를 선언하는 등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다.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면 나이, 소득에 상관없이 월 6220유로(약 800만원)의 특별연금을 지급받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이런 특별연금을 받지 않고, 보편적 단일연금 체제의 적용을 받기로 했다"며 "이는 보여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연금체제 개편의 모범성과 일관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아프리카 니제르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가족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며 크리스마스 연휴 파업을 비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아프리카 니제르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가족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며 크리스마스 연휴 파업을 비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마크롱 대통령은 퇴임 후 자동으로 부여되는 헌법재판소 종신 위원직도 포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 종신 위원에게 주는 수당 월 1만3500유로도 받지 않는다. 그가 이번에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연금은 특별연금과 헌법재판소 종신 수당을 합쳐 월 1만 9720유로(약 2540만원)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 체제를 포인트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 국가연금 체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한 연금수령 가능연령 상향 조정(현 62세에서 64세로)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계는 퇴직금 수령 연령만 높아지고 실수령 금액은 줄어들 것이라고 반발한다.

SNCF의 섣부른 조치와 마크롱 대통령의 승부수로 파업을 지지하는 여론도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업을 지지하거나 공감한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의 51%로 직전 여론조사 때보다 3%포인트 감소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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