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親金보수꼴통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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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3일 송두율씨가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연합]

독일 국적의 학자 송두율씨는 자신을 남과 북의 '경계인'이라고 불렀다. 국정원이 宋씨의 노동당 입당과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그는 '경계인'으로서 통일과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한 고매한 해외학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고향 제주에 정착, 구름처럼 모여드는 제자와 내방객들로부터 추앙받는 '구루(선각자)'가 되어 겉으로는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극비리에 남반부 적화운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입당 사실을 30여년 숨기고, 정치국 후보위원이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밝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소(訴)를 한국 법원에 제기했던 이력을 보면 그가 조국에 둥지를 틀고 적화사업을 안 벌였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는 철저히 위장한 채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남쪽의 대북관을 묽게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이론을 개발했다. 북한을 그 내부의 논리로 보아야 한다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이 그것이다. 그 이론의 본질은 북한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데 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일체제다. 金씨 부자체제를 비판하지 못하게 만든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宋씨는 이 이론 하나만으로도 노동당에 불멸의 공헌을 한 셈이다. 비밀당원이자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그의 신분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그것은 민족을 하나로 엮기 위한 그의 고심이 배어난 이론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은 남쪽을 매우 성공적으로 교란한 노작(勞作)이다. 그것으로 그는 김일성의 총애에 충분히 보답했고, 당원으로서 충실히 복무한 셈이다. 그러고도 그는 당원의식이 없었다고 농했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친북 인사일수록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북한을 비판하는 측을 수구꼴통.보수반동.냉전세력이라고 매도하기 일쑤다. 이제 이들에 대한 용어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친북세력이 아니라 친김(김일성.김정일) 보수세력이라고 불러야 정확한 용어 사용이 된다. 친북 입장이라면 2천3백만 동포의 삶에 대해서도 유신.군부독재에 항거했던 그대로 관심을 두어야 한다.

당연히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체제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투쟁 관성일 것이다. 그런 비판과 투쟁을 '친북인사'로부터 들어본 일이 있는가. 이 때문에 그들은 친북이 아니라 친김일성, 이제는 친김정일 옹위 보수 꼴통세력이라고 불러야 옳다.

친김 보수세력의 전형(典型)은 이렇다. 북한체제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비판도 하지 않는다. 북측의 남쪽 비판에는 장단을 맞추지만 대북 비판에는 수구꼴통이라는 등 온갖 부정적 용어로 모자를 씌운다.

말끝마다 민족을 앞세우지만 북한 동포의 비참한 운명에는 눈을 감는다. 그들은 5, 6공 시절 보수파를 분단 고착파로 몰아세웠지만 1990년대 이후엔 흡수통일은 안 된다고 사실상 반통일론자로 돌아섰다.

김정일의 부정적 측면이나 탈북자 인권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선 민족화합을 깨는 냉전적 사고를 한다고 몰아붙인다. 宋씨 같은 사건이 터지면 색깔론이 기승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날뛴다.

미국을 분단체제의 원흉으로 비난하지만 한국전쟁이나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선 전쟁발발 원인론이나 조작설로 대거리한다. 북핵 문제엔 미국의 호전성을 준열히 추궁하지만 북한에 대해선 핵무기 포기를 촉구하지 않는 등 지극히 미온적이다.

미전향 장기수의 송환에는 앞장섰지만 국군포로의 귀환 요구나 정상회담 비밀송금 사건 수사 같은 것으로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친김 보수꼴통들은 철저한 외눈박이다. 이런 외눈박이들 중 일부라도 宋씨 사건에서 각성, 두 눈을 뜨기를 진정 소망해 본다.

이수근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