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모임 명단 남아있었다”…日관방장관, 앵무새 답변에 동문서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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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일본 정부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이하 벚꽃 모임) 초청자 명단 백업 자료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명부를 모두 파기했다던 지금까지의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백업파일은 행정문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했던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내각부 간부가 지난 5월21일 벚꽃을 보는 모임 초청 대상자 명부를 파기했다고 국회에서 답변했지만, 그 시점에 명부가 백업 파일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5월 7일∼9일 무렵 명부를 삭제했지만 최대 8주간 백업파일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벚꽃 놀이 초청자 명단은 아베 정권이 유권자 매수를 위해 벚꽃 모임 행사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규명한 핵심 자료다. 야당은 5월 9일 명단을 국회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명단을 파기해 남아있지 않다고 답해왔다.

갑작스런 입장 번복에 기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백업자료가 남아있는데도 파기했다고 답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감시를 위해 요구했으니 제출하도록 노력하는 게 정부의 의무 아니냐'고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자 스가 관방장관은 당황한 듯 횡설수설했다. 그는 "백업 자료는 행정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 "명부는 공문서 관리법에 따라 보존 기간 1년 미만의 문서로 벚꽃 모임 종료 후 지체 없이 폐기하는 취급을 했다. 규칙에 따라 삭제했다"는 등의 답변만 되풀이했다.

질문공세에 동문서답을 하더니 급기야 "기다려 달라. 너무 상세한 질문"이라면서 보좌진이 답변지를 줄 때까지 대기하기도 했다.

이날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으로 아베 총리의 벚꽃 모임 스캔들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정부가 국회에서 허위 답변을 했다고 비판하며 내년 정기 국회에서도 벚꽃 모임 의혹을 계속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벚꽃 모임은 일본 총리가 벚꽃이 한창인 4월에 공적이 있는 각계 인사를 초청해 여는 정부 주관 봄맞이 행사다. 아베 총리는 세금이 들어가는 이 행사를 사적 자리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신의 지역구 후원회 관계자를 초청하는 등 사실상 선거 표 매수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초청자에 조직폭력배, 다단계 업체 회장 등 부적절 인물까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파문이 확산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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